인다라의 구슬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어린 왕자가 제안했다. “난 아주 슬퍼...... .”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여우가 말했다.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필리스 루트의 그림책 ‘겨울 할머니’는 인다라의 구슬을 보여준다.
‘겨울 할머니는 눈처럼 하얀 거위들을 데리고 혼자 살아요.’
‘봄이면 할머니는 꽥! 꽥! 꽉! 꽉거리는 거위들을 데리고 다녀요. 눈보라처럼 하얀 깃털을 날리는 거위를요.’
‘여름 내내 할머니는 깃털을 모아요. 하얗고 달처럼 빛나는 깃털을요.’ ‘가을이 오면 할머니는 한 땀 한 땀 이불을 꿰매요. 깃털을 가득가득 채워 넣으면서요.’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긴 날이 다가오면 할머니는 깃털 이불을 펼쳐서 흔들어요.’ ‘그러면 한 송이 한 송이 눈이 내리기 시작해요.’
할머니가 깃털 이불을 펼쳐서 흔들 때, 한 송이 한 송이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기적!
‘할머니가 이불을 털면 아이들은 집 밖으로 뛰어나와요. 아이들은 입을 벌리고 차가운 눈송이가 혀에 떨어지기를 기다리지요.’
‘어른들은 장작을 높이 쌓고, 스웨트와 벙어리장갑과 스키를 찾아주느라 바빠요.’ ‘산토끼들은 눈 신을 신고, 족제비들은 하얀 털옷을 입어요.’
이 경이로움을 우리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 내면의 아이들만이 보고 경탄을 한다.
어린 왕자는 사막의 여우를 만나 제안한다. “이리 와서 나하고 놀자.” “난 아주 슬퍼...... .”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여우가 대답했다. “난 길들여지지 않았거든.” 인간은 오랫동안 동물로 살다가 인간으로 진화했다.
서로 길들이는 존재로. 이 사회성은 타고 나지만, 자라면서 잊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서로를 길들여야 한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천지자연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천지자연은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다.
하지만,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생각에 의해 자신이 홀로 살아간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망상이 굳어지면, 인간은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모든 다른 존재들을 지배하려 든다.
불교의 대표적인 경전 ‘화엄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에 그 울림이 연달아 퍼진다.’
이 세상은 인다라망(因陀羅網)이다. 인간은 한평생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인다라의 구슬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예전에는 분꽃이 피는 것을 보고 쌀을 안쳤다고 한다. 오후 4시쯤 피어나는 분꽃, 쌀 안치는 소리... .
MBC 드라마 ‘연인’에서 이장현이 유길채에게 말한다. “분꽃이 피는 소리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내 오늘 그 진기한 소리를 들었소”
분꽃 피어나는 소리가 연인의 심장 소리와 어우러지며 그 파동은 널리 널리 퍼져갔을 것이다.
눈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였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 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 김승희, <장미와 가시> 부분
우리의 몸은 모두 가시투성이다. 서로의 몸을 오랫동안 할퀴어온 결과다. 우리의 몸은 생각한다.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꽃이 피겠구나 하고.’
우리는 이제 서로의 꽃 피는 소리를 들으며, 잎을 피우고,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