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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Dec 27. 2023

가벼움과 무거움의 사이에서   

 가벼움과 무거움의 사이에서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별 이상한 별이 다 있네! 아주 메마르고 아주 날카롭고 아주 각박한 별이야. 게다가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말을 해주면 그 말을 되풀이하고...... .     


 - 앙투안 드 생택쥐페리,『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산에 올라가서 “안녕.” 하고 말하자 “안녕......안녕......안녕...... .” 메아리가 대답했다.     


 어린 왕자는 생각했다. “아주 메마르고 아주 날카롭고 아주 각박한 별이야...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어. 말을 해주면 그 말을 되풀이하고...... .”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본다. 독백만 하는 사람들,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사람들.     


 체코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이런 현상을 ‘키치’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그는 키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키치는 두 가지 감동의 눈물을 흘러내리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두 번째 눈물이 말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두 번째 눈물만이 키치를 키치로 만든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을 보면, 우리는 상투적으로 생각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는 또 생각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는 “이 두 번째 눈물만이 키치를 키치로 만든다.”고 말한다. 첫 번째의 감동은 그럴 수 있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이들이 왜 잔디밭 위를 달리는지를 모른다.      


 상투적인 생각에 젖은 마음은 ‘착한 사람 콤플렉스’로 인해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된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전 인류와 함께 감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생각이 일상적이고 보편화 될 때, 우리의 삶은 키치(싸구려)가 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된다. 


 인류는 오랫동안 ‘삶의 의미’를 추구해왔다. 신화, 종교, 사상이 ‘삶의 의미’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인간은 삶의 의미에 짓눌려 버릴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삶에 무슨 의미가 있어?’ 다 던져버리고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게 된다.       


 인간은 이 둘 사이를 둥둥 떠다닌다. 이게 키치다. 같은 말만 반복하는, 상상력이 고갈된 삶이다.     


 우리는 ‘삶의 의미’에서 벗어나야 한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너의 희열을 따라가라!”고 했다.      


 우리의 깊은 내면에서 솟아올라오는 희열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를 통통 튀어 오르며 살아갈 수 있다.     


 희열로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을 둘로 나누지 않는다. 무거움과 가벼움, 의미와 무의미...... .     


 세상만사를 이 둘로 나누게 될 때, 우리는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하나를 배제해야 한다.      


 희열로 살아가게 되면, 이 둘은 나눠지지 않는다. 하나로 어우러진다. 우리의 삶은 ‘살아있음의 환희’가 된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똥’ 때문에 죽는 스탈린의 아들 야코프가 나온다.     


 스탈린은 저 하늘 높은 곳에 있다. 똥은 하늘 아래 가장 낮은 곳에 있다. 하늘이 똥 가까이 내려갈 수 있는가?     

 그는 화장실 청소를 하라는 포로 수용소장의 말에 분노해 철조망 쪽으로 달려가다 감전사하고 만다.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逍遙遊)는 이런 이분법의 그물망에 걸리지 않는 대자유의 삶을 말한다.      


 장자는 한평생 땅 위를 걸어가는 인간과 하늘을 날아가는 나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마음 놓고 듣네 

 나 똥 떨어지는 소리      


 - 서정춘, <낙차> 부분           



 시인은 산사의 해우소에서 ‘마음 놓고’ 듣는다. ‘똥 떨어지는 소리’      


 그 소리에 이어 모든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여래(如來)다. 삼라만상이 그저 시인에게 오고 갈 뿐이다.


 그도 아무것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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