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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Jan 10. 2024

시간은 삶이다   

 시간은 삶이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아무리 빠른 아킬레스도 그보다 앞에서 출발하여 쉬지 않고 이동하고 있는 거북이는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제논의 역설’이다. 아마 고등학교 다닐 때 들은 얘기 같다. 빠르게 달리는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기어가고 있는 곳까지 달려가면 거북이는 조금 더 앞서가고 있다.     


 아킬레스가 또 그곳까지 달려가면 거북이는 또 조금 앞서가 있고... . 그래서 끝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되지만 논박은 할 수 없었다. 이론상으로는 맞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분명히 틀린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이 제논의 역설은 ‘시간을 공간처럼 보았기에 일어난 오류’라고 했다.     


 그는 공간은 나눌 수 있지만, 시간은 나눌 수 없다고 했다. 아니? 시간은 나눌 수 없다고?     


 우리는 평소에 시간을 나누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아침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밥을 먹고... .        


 인생도 나누지 않는가? 10대, 20대... . 우리는 인생을 이렇게 나누어 각 나이대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베르그송은 우리의 상식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상식적인 시간관은 크로노스의 시간이다.     


 자식까지 잡아먹는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잡아먹어 버린다. 한 100여 년쯤 지나고 나면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시간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다른 시간이 있다.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나만의 시간’이다.     


 우리는 경험한다. 어떨 땐 1시간이 아주 느리게 가고, 어떨 땐 1시간이 휙 지나간다.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시간은 이러한 시간이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시간을 일정하게 나눈다.     


 절대적인 시간이다. 이러한 시간은 사실, 실제가 아니다. 현대의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 의해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는 학교에서 근대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절대적인 시간을 배웠다. 우리는 근대물리학의 사고의 틀을 갖고 있다.     


 그래서 제논의 역설을 논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성의 원리로 시간을 보면, 시간은 절대적인 길이로 나눌 수 없다.      


 따라서 시간을 나누어 보는 제논의 열설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절대적인 시간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간에 갇히게 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의 망령에 사로잡히게 된다.     


 카이로스의 시간관으로 시간을 보면, 과거는 없다. 우리의 기억일 뿐이다. 시간은 나눌 수 없기에 미래도 없다.     


 오로지 있는 건, 지금 이 순간, 찰나다. 오로지 경험으로만 살아온, 조르바는 카이로스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는 잠을 잘 때는 잠만 자고, 일할 때는 일만 하고, 키스할 때는 키스만 한다. 그에게는 항상 ‘지금 이 순간’만 있다.     


 시간은 삶이다. 지금 이 순간, 생생하게 살아있는 찰나다. 삶을 한껏 누리고 있는 나다.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절대적인 시간은 우리를 항상 고뇌하게 한다. 과거에... 현재에... 미래에... .     


 우리는 늘 시간의 흐름에 떠밀려가고 있다. 죽음이라는 최종의 목표지점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이상할 만큼 하얀 밤이 있다 

 그런 밤에는 모든 사물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그리고 많은 별이 상냥히 빛난다.

 경건한 예언자들을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인도하고 있는 듯.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상할 만큼 하얀 밤이 있다> 부분           



 신비로 가득한 세상, 실제의 세상이다. 우리의 생각이 끊어졌을 때다.     


 온몸으로 삼라만상과 소통할 때다. 


 이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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