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여 안녕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뒷산에 올라 무심히 뭇 생명체들을 바라본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들은 이 세상을 참으로 잘 살다 간다.
인간만이 고뇌한다. 인간은 이 무서운 질병을 찬탄까지 한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
어찌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배부른 돼지보다 더 나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는 ‘먹는 것’인데.
인간은 이렇게 스스로를 속여가며 살아간다. ‘생각하는 동물’로 진화한 인간의 비극이다.
인간의 모든 고뇌는 이 ‘자기기만’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제 자신을 속이는 데에 너무나 익숙해져 속이는 것조차 모르게 되었다.
인간의 태초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아이’를 보면 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는 무궁무진하게 행복하다. 이 아이는 모든 어른의 무의식 속에 살아있다.
자신의 감정을 속이며 살아가던 지식인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만나고서 회심(回心)을 한다.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조르바는 매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슬픔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슬픔이여 안녕!”
나는 오래전에 슬픔을 맞이하는 법을 배웠다. 가끔 요가를 하고 명상을 했지만, 일상생활에서 깨어 있기는 힘들었다.
51세 때의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죽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심장이 마구 뛰고 온몸에서 땀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팔과 다리가 싸늘했다. 그런데 마음은 동요가 없었다.
‘지금 아내를 깨우면 놀랄 거야! 차라리 내일 아침에 죽어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게 더 낫겠지.’
아침에 눈을 떴다. 그제야 현실이 내게로 다가왔다.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며칠 동안 누워있다가 ㅅ 대학병원에 갔다.
병명은 ‘불안 장애’였다. 모든 강의를 중단했다. 매일 뒷산에 올랐다. 길을 가다 주저앉았다.
하늘과 산이 빙길 빙글 돌고 귀에서 쇳소리가 크게 들렸다. 토할 것 같았다.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흘긋흘긋 쳐다보았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때 나의 슬픔을 맞이했다. ‘슬픔이여 안녕’ 호흡에 온 마음을 집중했다. 숨을 길게 내쉬고 들이마셨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다시 걸어가 평평한 곳에 돗자리를 펴고 요가를 했다.
코에 와 닿는 자욱한 아카시아 향기, 나는 서러움을 삼키며 요가를 하고 명상을 했다.
나는 나의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 전에 요가와 명상을 익히고 인문학을 공부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슬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이것이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일 것이다. 내가 그때 그렇게 크게 아프지 않았다면, ‘운명애(아모르파티)’를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기쁨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조르바처럼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게’ 된다.
이제 몸이 많이 좋아져 그때처럼 슬픔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내 안의 아이는 늘 깨어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가난한 눈물로 물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가게 해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다오.
- 이상희, <봉함엽서> 부분
우리는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맞이하지 못하여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우리도 시인처럼 ‘봉함엽서’를 써야 한다.
‘내 것이었던 두통’이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 주고, 나의 삶을 살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