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석근 Feb 03. 2024

모순을 넘어   

 모순을 넘어      


 나는 이 양자를 결합하는 희망, 양극이 화합할 길을 모색하여 지상의 생활과 하늘의 왕국을 동시에 얻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유럽에서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한국까지 안전하게 옮기려면, 반드시 천적이 필요하다고 한다.     


 물고기들이 들어있는 물통에 천적을 넣는 것이다. 천적을 만난 물고기들은 살려고 발버둥을 치다 살아남는다고 한다.     


 천적이 없으면 물고기들은 해이해질 것이다. 편안한 물고기들, 곧 죽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현대 철학의 문을 연 프리드리히 니체는 말했다.     


 “그대에게 경멸할만한 점이 있는가? 그대에게 존경할만한 적이 있는가?”


 물고기들은 천적이 없으면 자신들의 경멸할만한 점을 알지 못하게 된다.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정체된 생명체는 곧 죽는다. 생명체는 언제나 불처럼 타올라야 한다. 그러려면 존경할만한 적이 있어야 한다.     

 천지자연의 이치는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이다. 물과 불은 상극이지만, 동시에 상생이다.     


 물이 불을 꺼뜨리게 되지만, 완전히 마른 장작은 불에 잘 타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죽이면서 서로를 살리는 것이다.     


 가위바위보가 천지자연의 이치를 잘 보여준다. 가위는 바위를 이기지 못하지만, 가위가 쉽게 이기는 보가 바위를 이긴다.     


 이 세상에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는 것이다. 강자와 약자는 상황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다.     


 ‘손자병법’을 쓴 손자는 전쟁은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싸워보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지는 경우가 많다.     


 ‘길고 짧은 것은 재보아야 안다.’ 위기에 처하지 않으면, 자신의 잠재력이 깨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을 ‘모순(矛盾)’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모순의 모(矛)는 창이고 순(盾)은 방패다.     


 이 세상의 모든 방패를 뚫는 창은 없다.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창을 막아내는 방패도 없다.        


 밤과 낮은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함께 어우러져 있다. 선과 악도 그렇다. 선이 악이 되고 악이 선이 된다.       

 지상과 천국은 선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카잔차키스는 이 둘의 통합을 꿈꾸게 된다.     


 ‘나는 이 양자를 결합하는 희망, 양극이 화합할 길을 모색하여 지상의 생활과 하늘의 왕국을 동시에 얻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조르바에게서 이 둘의 합일을 본다. 조르바는 항상 ‘지금, 이 순간의 삶’에 물입한다.       


 매 순간 몰입하는 삶, 물질과 영혼이 하나가 된다. 지상의 생활이면서 하늘의 왕국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생을 편안하게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나와 남이 나뉘게 되고 나도 남도 결국 나의 적이 된다.     


 세상은 온통 적으로 득시글거리게 된다. 우리는 삶을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 매 순간, 닥쳐오는 것들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모순을 넘어서게 된다. 이 세상에는 나도 적도 사라지게 된다. 상생과 상극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영원한 율동의 세계가 있을 뿐이다.  



 빨간 장미밭에 춤추는 나비처럼

 우리는 불 속을 헤엄쳐 다니며 산다.

 너를 마셔 내 가슴속에도 불,

 때로는 너무 뜨거워

 눈물로 달래기도 한단다.


 - 이원수, <불에 대하여> 부분             



 삼라만상은 불이다. 영원히 타오르는 불이다.      


 우리 모두 불꽃 한 송이다.            


 ‘때로는 너무 뜨거워/ 눈물로 달래기도 한단다.’





작가의 이전글 마음 다스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