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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석근 Feb 09. 2024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조르바가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낡고 일상적인 것들이 마치 신의 손에서 막 빚어져 나왔을 때처럼 본래의 광채를 되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에서            



 공부 모임 시간에 한 회원이 질문했다. “오페라를 보러 오십 만 원씩 주고 가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대답했다. “오페라를 보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의미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현대 사회는 ‘소비 시대’다. 모든 가치는 소비로 정해진다. 책도 많이 팔리는 게 가치가 있게 된다.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유명한 사람은 가치가 높은 사람이 된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이름도 없는 사람(무명, 無名)이 된다.     


 오십 만 원을 내고 오페라를 보는 사람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돈이 가치를 부여해준다.      


 이러한 소비 시대에 살다 보면,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다. 값비싼 오페라를 보면서, 자신의 정신적 성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나 뮤지컬 봤어.’ ‘나 연극 봤어.’ ‘나 고전을 읽었어.’ ‘나 해외여행 다녀왔어.’ ‘나 영화 봤어.’.......      


 이런 것들이 보석처럼 장식품이 되는 것이다. 현대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문화가 자본이 되는 것이다.     


 돈만 많아서는 상류층의 대열에 끼지 못한다. 문화 자본이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졸부에게서는 존경심이 생겨나지 않는다. 이제 누구나 어느 정도 돈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나 갖지 못하는 것, 그것은 문화 자본이다. 뭐라고 말로 할 수 없는 아우라가 있어야 진정한 상류층인 것이다.     


 문제는 자연스레 그런 상류층이 되는 게 아니라, 억지로 상류층 흉내는 내는 것이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돈을 써서는 향기가 나는 귀족이 될 수 없다. ‘키치’가 되어버리게 된다.     


 어딘가 싸구려 티가 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귀족 흉내를 내지 말아야 한다.     


 알뜰살뜰 돈을 모아 고급문화를 접하려 하지 말고, 자신을 고급스럽게 만들어 가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내면에 고귀한 성품이 있다. 그 성품을 깨우는 것이다. 우리는 거친 노동자, 농사꾼의 손에서 풍기는 고귀함을 안다.     


 마음에 기품이 있으면, 몸으로 나타난다. 고급문화를 접하더라도 그것을 소비하지 말고, 영혼의 성숙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영혼이 고귀한 사람은 일상에서 접하는 모든 것이 기적이 된다. 마음이 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은 세상 만물을 신비스럽게 만든다.     


 ‘조르바가 하는 얘기를 듣다 보니 낡고 일상적인 것들이 마치 신의 손에서 막 빚어져 나왔을 때처럼 본래의 광채를 되찾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 세상은 신비로 가득 차 있으나, 우리의 마음이 더럽혀지게 되면, 한순간에 누추해져 버리게 된다.     


 우리는 항상 마음을 ‘리셋(원래의 상태로 되돌림)’시켜야 한다. 우리가 본래의 마음을 갖게 되면, 일상이나 예술이나 문화나 다 신비의 빛을 내뿜는다.     


 따로 고급문화를 접할 필요가 없다. 마음이 저급한데, 고급문화를 자꾸 접하다 보면, 삶 전체가 위선과 가식이 되어 버린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 얼마나 참담한 말인가! 이 시대의 율법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옥죄고 있다.  



 나의 신 속에 신이 살고 있다

 이 먼 길을 내가 걸어오다니

 어디에도 아는 길은 없었다

 그냥 신을 신고 걸어왔을 뿐     


 - 문정희, <먼 길> 부분            



 시인은 자신의 신을 보며, 신(神)을 본다.     


 우리가 잠시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항상 신이 함께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굳이 성소(聖所)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된다. 애써서 아름다운 것을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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