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풋사랑
배추꽃 속에 살며시 흩어놓은 꽃가루 속에
나두야 숨어서 너를 부르고 싶기 때문에
- 이용악, <꽃가루 속에> 부분
내게는 ‘슬픈 풋사랑’이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옆 분단의 뽀얀 여자아이의 웃는 눈과 마주쳤다.
가지런한 하얀 이가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그 아이는 여자중학교로 가고, 나는 남자중학교로 갔다.
어느 봄날, 하굣길에 보리밭 사이를 지나다 그 여자아이를 만났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묵묵히 걸었다.
그 여자아이와 함께 ‘꽃가루 속에’ 있던 시간이었다. 어느 날, 그 여자아이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색 도화지 4장에 펜으로 정성스레 편지를 썼다. 헤르만 헤세와 바이런의 사랑 시를 많이 인용했다.
그 여자아이 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되돌아 왔다. 학교에서 검열하고 내게 되돌려 보낸 것이었다.
그 후 다시는 사랑의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나 컸나 보다. 그 뒤의 나의 구애 행위는 거의 폭력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해!’ 나는 거친 모습으로 여자에게 다가갔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부드러운 남자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느 모계사회에서는 남자들은 노래를 부르며 여자에게 구애한다고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중년이 되어서야 다시 시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의 섬세한 감각을 깨우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