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를 위하여
우리 육체의 집을 지어도 그 문가에서 서성거리는 것은 마음의 집이 멀리 있기 때문이다.
- 이성복, <집> 부분
아마 5060 세대는 젊은 시절에 ‘천상의 여인’을 가슴에 품고 있었을 것이다. 바라보기만 해도 눈 부신 여인.
‘1274년 어느 봄날, 파티에서 어린 단테는 베아트리체라는 이름의 소녀를 보고는 한순간에 경외심에 사로잡혔다.’
그 후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불멸의 여인이 되었다. 그 당시 단테는 아홉 살, 베아트리체는 여덟 살이었다.
천상의 여인, ‘베아트리체’는 우리 각자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다. 그 여인에게는 감히 성적인 행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성적인 행위는 ‘지상의 여인들’에게 했다. 육체와 정신의 분리, 그 당시 청춘 남녀들의 사랑의 철학이었다.
지금도 이런 ‘플라스틱 사랑’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다.
‘사랑의 집’은 마음과 육체가 하나인 집이다. 사랑의 집을 따로 짓게 되면, 우리는 두 집 사이를 오가다 쓰러지게 된다.
베아트리체는 미완의 사랑이 만든 허상이다. 인간의 욕망은 결핍에서 나온다. 베아트리체는 결핍이 만든 욕망의 환상일 뿐이다.
인간의 마음은 육체 그 자체다. 육체를 떠난 마음은 없다. 사랑도 육체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환상일 뿐이다.
남녀는 섹스에서 ‘죽어도 좋아!’를 체험해야 한다. 찰나가 영원이 되는 사랑, 이것이 불멸의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