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장면, 두 개의 자막

우리는 다른 언어로 대화했다.

by 마음이 하는 말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같은 조명을 받고,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분명 부드러웠고,

잔 사이로 흐르는 웃음과

말끝마다 번지는 온기까지

겉으로 보기엔 완벽히 같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안의 무의식과 그의 무의식은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장면 속에서

서로 다른 자막을 달고 있었다.


나는 ‘앞으로’를 말했고,

그는 ‘지금’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약속을 들었고,

그는 순간의 감정을 전했다.


같은 온도라고 믿었지만,

실은 다른 계절에 있었다.

나는 봄을 준비했고,

그는 가을을 즐기고 있었다.


감정은 종종 이렇게 엇갈린다.

겉으론 부드럽게 공명하지만,

속으로는 서로 다른 파동이 번져나간다.

그리고 그 파동이 이어지지 못할 때,

우리는 같은 자리에 있어도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사랑의 어려움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서로 다른 자막을 읽는 데서 시작되며

그렇게 어긋난다.

순간의 진심이 나에겐 약속처럼 들리고,

그 사람에겐 그날의 온도 그대로 남는 것처럼.


이제야 안다.

그의 말이 거짓이었던 건 아니다.

다만 그 진심이 머무는 시간과,

내가 믿고 싶었던 시간의 길이가

달랐을 뿐이다.


사랑은,

순간의 진심만으로는 부족하다.

같은 장면을 볼 때

비슷한 자막이 떠오를 만큼의

공유된 감각과 이해가 필요하다.


keyword
이전 04화이 감정 믿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