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랑은 믿음보다 용기가 먼저 필요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나는
마음의 과정을 언어로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건 나의 직업이자, 나의 습관이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쉽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언제, 왜, 어떻게 마음이 움직였는지
항상 나 자신에게 묻고,
그걸 스스로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렇기에,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의 드러난 말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의도, 욕구,
비언어적인 감정의 결이
그대로 내게 읽힐 때가 있다.
단어보다 뉘앙스,
표현보다 선명한 느낌.
그럴 땐 마음이 아려온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 알 수 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의 질서를 조용히 흔들어놓은
한 문장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노래와 함께 보내온 메시지였다.
“처음엔 설렘이
감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설렘이 줄고 익숙함이 커질수록
오히려 그 속에서 소중함을
잊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나는 이런 걸 사랑의 자격이라고 생각해.
진짜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선
사소한 감사함을 놓치지 않으려는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어.”
“옆에 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면
사랑할 자격도,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거니까”
“서연이라면…
소중함을 잊지 않는 그런 사랑,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랑 이런 사랑... 하지 않을래?”
이 메시지를 읽는 순간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무너졌다.
그 말은 다정했고, 진심 같았으며,
내가 오래 기다려온 언어에 가까웠다.
내 직감은 알고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풀어놓는 사람.
하지만
그 순간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안의 직감을 조용히 흔들었다.
나는 긴 시간, 때를 기다려왔다.
좋은 인연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때
찾아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를 가꿨고,
더 매력적이고, 더 성숙해지기 위해 애썼다.
가끔은 그런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이 모든 게 정말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아니면,
'언젠가 만날 누군가'를 위한 준비였던 걸까.
그의 그 말 한마디가
내가 오랜 시간 쌓아온 준비와 다짐을
조용히 흔들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질문했다. 이 감정 믿어도 될까?’
그 사람의 말은 다정했고,
그 순간은 따뜻했지만,
그 다정함이 정말 나를 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사람 자신을 위한 말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사랑은 믿음보다 먼저,
용기가 필요한 감정인지도 모른다.
확신이 생긴 뒤에 마음을 여는 게 아니라,
마음을 열었기에 확신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모든 관계는 내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나의 선택이니까,
흔들리지 말자고.
상처받을까 두려워 멈춰 서 있기보단
조금은 어리석어도,
한 발 내디뎌보는 게 나답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