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허락하는 일
사랑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든
그 속에서 진심이 생기고,
변하고, 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연애가 시작되면 설레고,
망설여지고,
궁금하고,
보고 싶고,
문득 생각나는 이 모든 감정들 속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
사실, 이런 감정들엔 설명서가 없다.
설렘 뒤에 어떤 대가가 따를지,
기대 끝에 어떤 감정이 기다릴지
누구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겪어보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이라는 파도를 맨몸으로 부딪치며,
그렇게 서툴게,
때로는 아프게
사랑을 배워간다.
마치 처음 타보는 자전거처럼,
넘어지고 깨지면서도,
언젠가는 균형을 잡게 되는 것처럼.
중국 출장을 가기 전 내게 온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럼 우리 이제 정식으로 사귀는 거죠?"
그렇게 우리는 시작되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뒤, 우리의 첫 데이트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조용한 드라이브였다.
이곳저곳을 함께 둘러보며
그 사람은 이야기했다.
“나중에 이런 곳에 집 짓고 사는 건 어때요? ”,
"이런 집은 어때요?"
자재, 구조, 동선..
그 사람의 현업 분야의 지식과 함께
조심스럽게 내비치는 미래의 조각들.
그 순간 나는 느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삶의 그림이 분명한 사람이구나.
나는 늘 조심스러운 사람이다.
생각이 많고,
세심하고,
섬세하다.
어릴 적부터 그랬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직감이 발달한 아이였다.
나의 직감은
언제나 분명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했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형체 없이 떠다니는 감정의 입자들.
나는 그런 것들을
조심스럽게 생각의 언어로 품고 있었다.
그래서 늘 궁금했다.
그것들이 진짜인지,
내가 만든 착각인지.
머릿속에 떠오른 감정의 조각들을
뚜렷하게 붙잡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해석하고,
마음속에서 그 의미를 되묻곤 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 한마디,
그 사람의 빈 시간,
그 사람의 눈빛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나 자신을 직면하고는
무서웠다.
어느새 마음이 자라 나도 모르게
기대라는 싹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런데 기대는 늘 그렇다.
기다림과 상처를 품은 채 피어나는 감정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한 걸음 내딛는 것이
마치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나의 마음이,
그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아닐까 두려워서.
그럼에도
그 사람의 말투,
짧은 농담 한마디,
무심한 듯 챙겨주는 배려들이
내 안에서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화려하게 시작되지 않았다.
그저 매일의 아주 작고, 조용한 순간들
그 안에서 서서히 자라났다.
그 사람 앞에 서면
괜히 말이 많아졌다가,
괜히 조용해지기도 했다.
속으로는 수십 번,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또, 그 사람이 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 사람보다도
그 사람 옆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내 모습"을 더 느끼고 싶었던 거 같다.
우리는 서로의 거리에서 맴돌았고,
가끔은 엇갈렸지만
그래도 한 걸음, 또 한 걸음
조심스레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