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애착과 회피 애착의 연애
우리는 분명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같은 계절을 지나고 있었다.
함께하는 시간이 익숙해졌고,
둘만의 소소한 즐거움이 늘어가던 나날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어색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불안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고,
그와의 거리감은 말없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안기고 싶었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나는 말하고 싶었다.
“나 좀 안아줘.”
“우리, 뭔가 어색해진 것 같아.”
“무슨 일 있어?”
하지만 그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 생각이 많아서일까 봐
부담을 줄까 봐,
내 감정을 꾹 삼켰다.
모호한 불안을 해석하려 애쓰다
결국 나는 침묵을 택했다.
나는 불안했고, 침묵과 무심함 속에
끊임없이 해석하고 추측했다.
그는 불편했다. 까워질수록 마음을 닫고,
다정함보단 거리를 택했다.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줬고,
그는 감당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아주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의 침묵을 '관심 없음'이라 해석했고, 그는 나의 감정표현을 '압박'으로 느꼈다.
나는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써 말을 걸고, 마음을 열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같은 길 위를 걷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너는 점점 깊어지는데,
나는 그렇지 못해서 미안하지..
너무 좋은사람이고 편해.“
편하다는 말. 그건 누군가에겐 고마움일 수 있지만,
그날의 나에겐 끝이라는 예감처럼 들렸다.
“지금 드는 생각은
익숙하고 편하면 되지 싶은데,
이상하게 더이상 감정이 안생겨.“
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무너졌다.
떠난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없었지만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그 말 한 줄속에
이미 마음이 떠나버린 사람이 있었다.
그 어떤 이별의 말보다
깊고 조용하게 내 마음을 찔렀다.
내가 고이 가꿔 건네었던 마음,
온기로 감싸 내어줬던 진심이
그에게 온전히 닿지 못하고
‘부담’으로 전해져 버렸다.
그 순간,
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게 돼버리는
경험을 온몸으로 하고 있었다.
말보다 침묵이 길어졌고,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시선은 점점 멀어졌다.
나는 더 이상 그 사람 마음속에서
‘기다려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도 "끝내자"라는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엔 그에게 닿지 못한
내 마음만 남아 있었다는 걸.
사랑은 결국,
같은 무게로 교환되어야 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너무 많이 내어줬고,
그는 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었다.
나는 불안 애착이었다.
감정을 빠르게 느끼고 확신을 원했다.
그 사람의 반응속도보다 훨씬 앞서가며
감정표현을 던졌다.
그 안에는"확신을 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답이 없으면 불안했고,
불안은 서운함이 되었고,
서운함은 실망으로 이어졌다.
그는 회피 애착이었다.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감정의 속도를 조절하려고 했고,
내가 빠르게 다가갈수록 그는 조용히 멈춰 섰다.
표현은 적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곁에 있으려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용히,
꾸준히 곁에 머물렀던 순간들이 있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내가 바랐던 방식과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서툴렀다는 것을. 나는 그 사람에게 기대고 있었고, 그 기대를 나도 모르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왜 상담 현장에서 '경계선'내담자들과 유난히 감정적으로 깊이 연결됐는지 오늘에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감정적 폭발만 없었을 뿐 나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깊은 사랑을 많이 받고 싶고 불안했던 사람이었다.
불안 애착과 회피 애착의 조합은 연애 관계에서 가장 흔하지만, 가장 많은 오해와 고통을 만드는 조합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강한 끌림이 생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의 애착 욕구는 충돌하게 된다.
한 사람은 다가가고,
한 사람은 멈추거나 피한다.
한 사람은 표현하고,
한 사람은 침묵한다.
한 사람은 확인받고 싶고,
한 사람은 벗어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사랑은 엇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