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

지하철역나무

by 기억나무

몇 년 만에 지하철을 이용해서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긴장하고 낯설어서 어색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면서 지하철에 올라탔다.

주말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좌석이 한가하길래 한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둘러맨 가방을 어깨에서 내리고 지인 작가님께서 선물해 준 책을 꺼내서 펼쳤다.

오고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권을 완독 할 생각으로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어디쯤 왔었을까

어느 역에 정차한다는 역무원의 안내 방송과 함께 문이 열리고 시원한 바람이 훅 들어오면서 거칠게 내뱉은 남자의 '쓰읍' 하는 소리가 나의 집중력을 깨뜨렸다.

자연스럽게 책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부인 듯 보이는 남녀가 지하철에 오르고 있었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여자는 두려움과 걱정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면서 무엇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런 여자의 부탁에 남자는 연신 쓰읍 소리를 내면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거절하고 있었다.

여자를 왜 저렇게 대할까 하는 불편한 시선으로 흘깃 거리며 쳐다보고 있을 때 지하철의 진동에 여자가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남자는 여자의 고개를 자신의 어깨에 기댈 수 있도록 해주고 한 손으로 여자의 어깨를 감싸 안아줬다.

그러고도 불안했는지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는 여자의 두 다리를 정리해 주고 두 발을 어깨너비만큼 벌려 주더니 다시 여자를 감싸 안았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되는 여자의 부탁을 남자는 쓰음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거절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부탁을 하길래 저러는 것인지 궁금해서 귀를 활짝 열었지만 지하철의 소음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 결정적으로 그 두 남녀의 말투는 정상적인 말투보다 어눌해서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 번 시선을 빼앗긴 나는 꽤 오랫동안 그 남녀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쓰읍 소리가 멈추고 여자는 남자의 몸에 안기다시피 서있고 남자는 그런 여자를 단단히 붙잡고 말없이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사연을 알 수 없지만 저 남자의 거침도 여자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처음 장면만 보고 도착지에 도착했다면 그날 오랜만에 탔던 지하철의 기억은 그 남자의 거친 표정과 쓰읍 소리로 인해서 불쾌했을지도 모르겠다.

부자연스럽고 거친 남자의 표정과 목소리 뒤에 숨겨져 있었던 자연스럽고 따뜻한 남자의 행동은 불쾌했던 나의 기분을 그들을 보기 전의 기분으로 되돌려 놓았고 다시 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것.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이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타인의 눈에 거칠어 보이는 사랑도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그 무엇보다 따뜻하고 깊은 사랑일 것이다.

그날 그 지하철에 편견 한 조각을 놓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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