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나무

커피나무

by 기억나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퇴사 후 집에서 백수로 지낼 때 있었던 이야기다.

놀며 쉬며 지내기에 맞춤인 오월에 퇴사를 한 나는 한동안 혼자서 여행도 다니고 카페 투어도 하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독립서점과 북스테이도 다녀오며 신나게 돈도 쓰고 시간도 쓰고 에너지도 썼다. 교통사고 후유증 때문에 퇴사를 했는데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 바쁘게 다니고 더 많이 운전을 하고 다녔다.

석 달 동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집 밖으로 나가서 놀고먹는 백수가 누리는 여유를 어느 정도 충족하고 나니 그 생활도 시들해지고 귀찮아져서 남편과 함께 강아지 산책시키러 나갈 때 외에는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그즈음부터 방학이라서 집에 있던 딸아이가 반복해서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 엄마 오늘은 뭐 해? 무슨 계획이 있어?”

이 질문에 난 늘 같은 대답을 했다.

“ 아무것도 안 해. 계획 없어 그냥 쉴 거야.”

나의 대답에 딸아이는 폭풍 잔소리를 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런 반복된 질문과 대답을 한 지 서너 달 이 지날 때쯤 딸아이가 같은 질문을 했다. 어제도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하루를 보내던 나도 같은 대답을 했다. 그날은 날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내 옆에 찰싹 붙어서는

“ 엄마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오늘은 무조건 집을 나가요 화장도 하고 옷도 좀 예쁘게 입고 도서관을 가던가 엄마가 좋아하는 카페 가서 책을 읽던가 무조건 나가요.”

작정하고 날 집 밖으로 내보낼 결심을 한 딸아이 성화에 못 이겨서 도서관이나 다녀와야지 하는 생각으로 화장도 안 하고 옷도 예쁘게 입지 않은 채로 집 밖을 나섰다.

날씨는 쌀쌀한데 햇살은 좋아 걷기에 기분이 좋은 날이라서 내가 나와 준거라고 혼잣말을 하며 걷고 있을 때 은행 알람이 울렸다 핸드폰을 보니 딸아이의 이름으로 만 원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집 카톡 알람이 울렸다. 딸아이가 보낸 카톡이었다.


‘엄마 돈 아낀다고

그냥 걷다가만 들어오지 말고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쉬다가 들어와 ~♡’


걸음을 멈추고 숨을 크게 한 번 들여 마셨다. 시원한 공기가 나의 폐에 가득 찼다가 다시 따뜻한 입김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마를 집 밖으로 억지로 내보낸 것이 미안했던 것일까 아니면 쌀쌀한 날씨에 엄마가 길거리를 무작정 헤매고 다닐까 봐 걱정이 된 것일까 엄마에게 커피 용돈을 입금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원의 지폐를 손에 쥐고 있듯이 핸드폰을 꽉 잡은 체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옷도 좀 차려입고 나올걸. 얼굴에 뭐라도 좀 바르고 나올걸, 그럼 딸아이가 준 커피 용돈으로 좋은 음악이 흐르는 멋진 카페에 앉아서 책 한 권 읽고 있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아서 보내줄 텐데.

대학생이 된 딸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않는다. 부모가 준 용돈 외에 더 필요한 돈은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하라고 했기 때문에 딸아이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했다. 공부할 것이 많은 딸아이의 과 특성상 평일에 좀 더 공부하고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주말을 모두 반납한 체 다리가 퉁퉁 붓도록 일하면서 받는 시급이 만원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제 용돈에서 엄마 커피 용돈을 입금해 준 딸아이가 기특하기도 하고 엄마를 응원해 줄 만큼 컸다는 생각에 대견하기도 했다.

오죽이나 엄마 걱정이 되었으면 집 밖으로 내보낸 뒤에 커피 용돈을 보내서 날 위로했을까 싶은 생각에 미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후줄근한 나의 차림새 때문에 사진을 보낼 순 없었지만 딸아이의 바람대로 조용하고 아담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유난히 커피가 쓰기도 하고 맛있기도 한 날로 기억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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