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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어느 일요일 오후

지금처럼만

by 빛해랑

가슴에서 쿵 소리가 들린다.

" 여기 사는 사람이 자기가 아들이라 하더라." 황당한 건 되려 당신이라는 듯이 미소를 지으신다. "아들이라 하니 아들인가 보다."생각한다고 하신다.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형님 내외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형님 내외 보기 민망했다. 작은 아들, 작은며느리는 늘 반갑게 알아보시기 때문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을 분별 못하신다. 큰아들은 어디 있냐는 남편의 물음에 시골집 주소를 말한다. "거기 살고 있지." 혹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시는지 내 얼굴을 슬쩍 바라보신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가벼운 치매 초기 증세다. 하지만 어머니는 드라마에 나오는 치매 환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보통 우리처럼 일상생활 잘하신다. 말씀하시는 것도 여느 지각 있는 사람 못지않다. 기억이 시공간을 넘어 다닐 뿐이다. 이 정도면 치매 초기라고는 하지만 구순을 넘긴 어머님이 크게 이상할 것 없다. 약을 드시고 계시니 지금처럼 내 옆에 계셔주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무병장수가 꿈이지만 사람의 생로 병사는 어찌할 수 없다. 자연의 이치다. 어머님의 한순간 하루가 기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직은 무릎관절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건강하시다. 두 손을 꼭 잡아주면서 옆에 놓인 과일을 입에 넣어주신다. 아이들 안부도 챙기신다.


어머님 살아계신 하루가 소중하다. 드시는 식사 한 끼가 보약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인자하게 웃어주시는 얼굴, 온화한 표정 계속 보고 싶다. "어머님 제가 누구예요?" 하면 "우리 작은 며느리지." 그 말씀 오래오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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