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난다면 말이야 나는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테야" "얼씨구 누구는?" 나도 모르게 미운말이 튀어나온다. 빈말도 해주지 않을 만큼의 애정도 없단 말인가 싶어서다. 따지고 보면 남편의 불만이 이해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당연한 것일지도.
다시 직장에 복귀하기 전까지 잠시 전업주부로 지낸 기간이 있었다. 그 무렵 딸아이가 카페에서 알바를 했었다. 하루는 카페 사장님과의 대화를 들려주었다.
사장님 밥은 먹고 왔니? 뭐 먹고 왔어?
딸 안 먹었어요. 밥이 없어요.
사장님 엄마가 바쁘신가 보다 일하시니?
딸 아니요. 집에 계세요.
사장님 아프셔?
딸아니요. 안 아파요.
사장님 아... 음... 그럼....
딸 책 읽고, 도서관 다니느라 밥 안 해요.
사장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10초는 박장대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침묵. 사실 창피 했다. 왜 집에서 주부로 살면서 살뜰하게 끼니를 챙겨주지 못했는지.... 정작 딸아이에게 "너는 괜찮니?" 물으니 "엄마 내가 챙겨 먹을 나이이고 또 열심히 집밥만 먹고살지 않아서 그런지 난 아무렇지도 않아" 고맙구나! 그리고 살짝 미안하구나 하하.... 집과 가까운 카페였는데 사장님이 이상한 사람으로 보실까 봐 가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남편의 불만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가끔 자신은 돈만 벌어다 주는 하숙생 같다고도 한적 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현재다.
누구의 탓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살면서 잠시 다른 길도 가볼 수 있잖은가. 나의 땅에 씨앗을 뿌리는 사이 다른 정원에는 물조차 주지 않았나 보다. 탓하는 이류가 되지 말고 알아차렸으면 '그냥 하는' 일류가 되어야겠다.
남편은 단순함이 장점이다. 맛있는 요리 두세 번만 해주어도 폭풍감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착한 심성을 믿고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한 거다. 두부와 감자를 좋아하는 남편이니 없는 솜씨라도 발휘해야 하나?
자식에게는 혀 짧은 소리, 코맹맹이 소리 온갖 애교가 술술 잘도 나 오는데 왜 남편에게는 곧 죽는데도 하기 싫어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굴곡의 강을 건너온 탓이리라.어려움을 함께한 시간이 많은 만큼 단단해진 사랑으로 보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