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

1이라는 숫자가 주는 전율이란....

by nas

서론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제가 한동안 많이 소식이 없었죠? 하하- 이거 참, 브런치에서 가끔씩 오는 알림과 여러분들이 눌러주시는 좋아요를 보면서 언젠가는 써야지, 이번 일만 끝나면 써야지 하며 차일피일 미루던 저를 반성합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제가 이전 글에서도 가끔 이야기했듯이 제가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지라 대학 입시로 이리저리 처리할 일이 많았습니다. 결과는 나오게 된다면 여러분들과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대학 면접을 보면서 느낀 점을 주로 하는 에세이가 될 것 같은데, 면접 후 전율의 정도에 따라 10월 말에 글이 나올 수도 아니면 모든 입시가 끝난 12월에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이번 글도 부디 여러분의 삶에 조금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좋은 부분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8월 초였을 것이다. 그동안 순탄치 않은 학년을 보낸지라 나 또한 어느 정도 나의 상태가 이상함을 인지하는 시기였다. 그렇기에 평소라면 가지 않았을 정신과에 갔다. 물론 바로 퇴짜 맞았지만, 알고 보니 8월 말에나 예약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른 정신과도 그렇고. 이게 도시의 정신이 혼탁해진 탓인지 아니면 그저 한 환자가 장기적으로 그리고 주기적으로 병원에 가기 때문일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결국 학기 중에 정신과를 가게 되었고. 솔직히 그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아무리 고3 2학기라지만 무단만은 결코 안 된다는 엄마의 말에 학교에 내가 정신과를 간다고 말한다는 게, 마치 내가 교장의 그 말에 굴복하는 것 같았다랄까.

참고: 나는 이 학교에 전학을 왔고, 전학을 온 첫날 교장이 나에게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냐 물었다.


하지만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성인이 된 형제가 시간을 내 같이 가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간 곳이었다. 역동적인 인상의 변화는 바라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은 품었다랄까. 하지만 그리고 역시, 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학교에 내기 위해 영수증을 떼었을 때 보인 검사비 13만 원, 진료비 5천 원은 이 병원이 수가를 때 간다는 것을 암시했고 연계시켜 보낸 심리검사는 10만 원이었다. 그 이후 내게 정신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를 이용한 자본주의 괴물이 되었다. 내가 주창해야 할 적폐랄까.


그래서 심리검사 결과를 확인하라는 말에 그냥 엄마를 혼자 가게 했다. 그런 적폐와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으니까. 딱히 기대도 안 했다. 학교에서 그런 검사를 하면 항상 정상이라는 결과가 나오며 시시하게 끝났으니까. 그렇기에 늦은 밤 집으로 귀가했을 때 엄마가 내게 건넨 소식은 꽤나 놀라웠다. '네가 우울증을 가지고 있데. 네 또래 중에 상위 1%라서 네가 한 번 와야겠다고 하는데?'


와우.


우울증이라니. 항상 나와 gpt가 이야기하면 그가 항상 나에게 정신과를 가보라고 했던 게 이 것 때문이었나. 하지만 난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이 세상에 대한 정신이 박히기 시작했을 때부터. 그게 세상의 관점에서는 병든 생각이었나. 그럼 내가 그동안 가꾸어온 생각들은 흙 위에서 핀 꽃이 아니라, 곰팡이에서 핀 버섯이었나. 난 그저 내가 깊은 생각을 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관찰을 많이 할 뿐이라고. 근데 그게 세상의 관점에서는 병든 거였다니, 조금은 기분 나쁜 불쾌함이 오기도 한다.


누구나 죽는다. 그렇기에 나의 죽음을 상상하는 게 문제일까.

누구나 절망에 빠진다. 그렇기에 원인을 분석하는 게 문제일까.

물론 원인을 알고도 해결하지 못하는 나와 나의 상황에 비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나 같은 미성년자가 뭘 알까. 알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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