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30대 중반, 인 서울 대학교 이공계 졸업, 외국계 IT 기업 근무.
여자. 30대 초반, 인 서울 대학교 인문계 졸업, 외국계 금융 기업 근무.
다른 듯 비슷했던 둘의 가장 큰 공통점은 30년 이상을 각자 강남 한 동네에서만 산 '강남 키즈'라는 것이었다.
중학교 때 유행했던 프라다 백팩의 추억을 시작으로, 다양한 기억을 공유하며 그들은 친해졌다.
그렇다. 이것은 결혼 4주년을 갓 지난 나와 남편의 이야기이다.
얼핏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우리 부부에게 아직 내 집이 없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위해 적는 글이다.
'재수 없어. 어디서 여유 없는 척이야.'
그녀가 입 밖으로 꺼낸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었다.
회사 직원들끼리 모여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다 같이 푸념하는 자리였다.
내가 맞장구를 치자 그녀는 말했다. '에이~ 대리님은 눈을 좀 낮추시면 될 것 같은데요?'
그래, 맞는 말이었다. 눈을 낮추면, 대한민국에서 어떻게든 두 명 누울 집은 구입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디까지 낮추느냐이다. 각각 강남, 광화문으로 출근을 하는 맞벌이 부부가 집을 구하러 저 멀리 북한까지 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서울/경기 집값은 이미 직장인 둘이 마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찌어찌 대출을 해서 산다고 해도, 남들은 집값이 몇백% 씩 오르는 동안 우리는 제자리걸음인 그런 집을 덜컥 살 수도 없었다. 내 집 마련도 못하는데 수익률까지 따진다니, 욕심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다들 생각이 비슷한지, 괜찮다 싶은 집들의 매매가는 그렇게 점점 치솟았다.
'눈을 낮추라'는 말 다음에는 으레 '든든한 부모님이 계시니까'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당장은 아니어도 나중에 물려주시겠지 하며, 사람들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 양가 부모님들의 재산 증여 플랜을 자유롭게 상상한 후 그 시나리오들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것 또한 완전히 잘못된 생각들은 아니었다. 실제로 주변에 그런 경우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설정에 디테일 한 스푼이 추가되면 완전 다른 시나리오가 되는 법. 두 부모님들은 우리의 결혼에 충분한 도움을 주셨지만 동시에 '자립'을 중시하셨기에, 집까지 사 주시진 않았다.
나도 다 큰 어른이 되어서 도움은 못 드릴 망정, 부모님 노후 자산을 빼먹고 싶지는 않다는 고집이 있었다.
어떻게든 대출을 땡겨서라도 LTV가 80%였던 그때 샀어야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돈을 빚지냐고 펄쩍 뛰었던, 결혼 전의 바보 같았던 나.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집값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초고금리 시대가 도래하고 부동산 가격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락하면서, 우린 또 다른 상황에 직면했다.
2+2년 전세 후 계약 당시보다 2억이 더 뛴 전셋값에, 우린 서울 끝자락의 또 다른 전세로 이사를 갔다.
이번엔 전세 대란 막차를 탔는지 1주일 만에 5천만 ~1억씩 뛰는 전셋값을 보며, 급하게 계약을 했다.
좀 비싸긴 했지만, 나름 반전세에 계약을 했다며 좋아했었다.
하지만 이사 후 몇 달이 지나자, 급매물이 전세가와 동일하게 나왔다는 부동산 전화를 받았다.
초 고금리로 인해 청약도 주저하는 마당에, 아무리 급매물이어도 집을 살 수 없었다.
집값이 낮아져도, 돈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4년이 지나도, 부동산에 관해서는 쭉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눈을 낮췄어야 했을까.
부모님께 노후자금을 헐어달라고 졸랐어야 했을까.
영끌을 했어야 했을까, 혹은 오히려 대출을 줄였어야 했을까.
강남 키즈로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부의 축적 DNA가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텐데.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강남 키즈고 나발이고 내 집이 없는 이유는 역시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