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에 떠나는 파리 유학 7

나에게 선물한 한 달

by 신경한

"6개월 금방이야."

"안 돼."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다. 점점 시간이 더 빨리 갈 텐데. 그리고 다음 주부터는 가족과 지인들이 올 거라 이젠 가이드로 살아야 한다.


2025년 9월은 나에게 선물한 한 달이었다. 매일 새벽 4시쯤 일어나서 병원일 체크하고 가족들과 카톡 하고. (이 시간이 없었으면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리곤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의 시작.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다. 쓸 내용이 너무 많아 거르는 게 힘들 정도였고.


시간 날 때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았다. 한 달 동안 총 31번. 공연 등은 보지 않았다. 남의 속도에 맞추어 관람하는 것보다 내 속도대로 감상하고 싶었다. 천천히 미술관을 산책하며 작품을 감상하고. 작가와 내 자신과 대화하고, 성찰하고. 와인 공부도 열심히 했다. 시음 노트 쓴 와인만 27종류. 물론 실력은 별로. 오히려 자신감이 줄었다. 와인, 어렵다.


많이 걸어 다녔다. 갤럭시 와치에 기록된 게 250km 정도. 한 달 동안 학교 스케줄 외엔 아무 약속도 잡지 않았고 밥도 항상 혼밥. 점심은 밖에서, 저녁은 주로 집에서.


개강 기념으로 Le Caveau de la Huchette라는 재즈바에 간 게 유일한 예외. 영화 라라랜드에도 나오는 유서 깊은 곳이라고. 재즈는 모르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젊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물론 좋다는 느낌이 오래가진 않았다. 나이 먹은 거 인정.


다들 즉흥적이고 아주 자유롭게 연주하는데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게 신기했다. 문득 인생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가끔은 즉흥적으로. 남을 배려하지만 자기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낭트로 가는 tgv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중간에 기차가 멈춘 지 한 시간 반이 지났다. 계속 방송은 나오는데 프랑스어라 뭐 때문인지 모르겠고. 요새 프랑스 전역이 파업 등으로 시끄러우니 그 때문일 것 같다. 유튜브에서 스텔라장 노래를 틀었는데 YOLO가 나온다.


언젠가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어.

오늘을 나에게 선물하기로 해.

열심히 살아왔잖아. 이 정도의 사치는 부려도 되잖아.

오늘이 지나면 다시 돌아가가겠지.

그래도 하루만큼은 날 위해 살고 싶어.


내겐 하루가 아닌 9월 한 달이었기에 너무나 감사하다. 앞으로도 가끔은 하루만이라도 오직 나만을 위해서, 진정한 나로 살아봐야겠다. YOLO처럼, 재즈처럼.


P.S 결국 앙제에 내려서 다른 열차로 갈아탔다. 플랫폼에서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많은 사람 중 나한테, 여기서 기다리는 게 맞냐고 프랑스어로 묻는다. Pardon. Je suis Coreen. Pas Francais.

기분이 아주 좋다. 가죽재킷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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