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이와 함께 자랐다

by 이팝

별일이 없는 날은 새벽에 남편을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돌아와서 주차해 놓고, 집 근처를 한 바퀴 산책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파트 앞 턱이 있는 공간에, 조금만 화분 몇 개가 옹기종기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조그만 강낭콩 떡잎이 올라오는가 했더니, 방울토마토와 케일잎도 보인다. 아마도 햇볕을 많이 받게 하기 위해, 밖에다 내어놓고 키우는 중인가 보다....


고사리손으로 삐뚤빼뚤 정성껏 지은 이름을 쓴 명패도 사랑스럽다.


그 손가락 마디만 한 새싹들은 오는 비 맞고,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뜨거운 햇살 아래 무럭무럭 자랐다.

산책길, 하루가 다르게 크는 모습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아마도 집에 초등학교 3~4학년쯤 어린이가 있는가 보다. 학교에서 봄쯤부터 요런 관찰학습 같은 걸 배우는 모양이어서, 우리 집 아이들도 강낭콩과 토마토를 키웠던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들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아이들이 매일 자라는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던 일, 잎과 열매의 색이 변하는 걸 관찰하며 기록하던 일.

마침내 자신들이 기른 열매를 수확해서 직접 먹어 보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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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나는 너무 서툴고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 것들의 뒷일이 모두 내일 같아서 내심 귀찮기도 하고 짜증도 났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크고, 오가며 요 오밀조밀한 화분을 바라보자니, 그때 아이들의 신기함 가득했던 눈망울과 얼굴 가득했던 미소가 그립기만 하다.

아이들이 만들어 준 참 귀하고 귀한 추억이었는데...


더불어, 지금 이 화분을 돌보는 동심의 손(아니, 어쩌면 그들의 부모)은 어찌나 야무진지.. 방울토마토를 이렇게 키웠어야 하는구나! 싶다.


곁순을 따주지 않고 크는 대로 내버려 두었더니, 베란다가 토마토의 치렁치렁한 순으로 밀림이 될 듯했던 일.. 아! 그래서 열매도 몇 개 안 열렸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도 얻는다.


그리고, 이 옹기종기 조그만 화분들이 크는 한 계절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


'내가 아이를 키웠다고 생각했지만, 나를 키운 건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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