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의 상징 '솔광장'

스페인의 중심, '0km 지점', 다시 돌아온다는 약속

by 이팝

"가우디는 키가 작았고, 그리 길지 않은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새벽하늘 같은 색과 투명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는 늘 매우 부드럽고 달콤한 미소가 떠올랐지만, 잘난 체하는 어리석은 사람 앞에서는 그 미소가 조롱으로 변해 다트처럼 날카롭게 상처를 입혔다.

그는 종종 격정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크게 불타올랐다. 그것은 그의 내면에서 타오르던 불꽃이었다. "

-호아킴 시베라 이 소르마니, 1964년



가우디의 동네 바르셀로나를 떠나 마드리드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다시 산츠역으로 향했다.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스낵바에 앉아 잠시 음료와 가벼운 샌드위치를 하나 먹었다. 우리의 보딩 수속이 시작되기 전까지 벤치에 앉아, 캐리어를 끌고 여기저기 붐비는 여행객들의 오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잠시 후, 우리도 줄 서서 보안 검색을 받고, 역사 안으로 들어섰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서도, 기차 도착 전까지 한동안 기다려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차분하게 앉거나 오가며 기다렸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은 그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여기저기 왔다 갔다 바닥 구르기도 하고 뛰기도 한다. 이 어린 여행자들의 보호자들은 그 무표정속에 육아의 피곤함이 역력하다.


어떤 젊은 엄마는 두 남자아이의 손을 끌어 역사내 의자가 배치된 맨 뒤로 가더니 벽을 등지고 앉아 조그만 스카프 크기의 러그 같은 것을 펼쳤다. 그리고, 칸이 여러 개 질러진 투명 플라스틱통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팔찌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 구슬과 조그만 장식품들이 담겨 있었다.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두 형제는 얼른 무릎을 굽혀 엄마 주변에 옹기종기 앉더니 그것들을 하나씩 꿰면서 엄마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반응을 살핀다. 아마도 자기가 만드는 모양이 어떠냐는 물음 같다. 엄마는 침착하고 낮은 조용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소곤소곤 얘기해 준다.


지루함이 싫은 아이들이 뛰고 구르는 장난기를 조용히 슬기롭게 다독거리는 중이었다. 어린 여행자들의 여행은 그렇게 자라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부모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드디어, 아토차행 기차가 도착했고, 우리는 탑승해서 선반에 짐을 올렸다.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까지 iryo기차는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고속열차라서 그런지 가격대가 좀 비싼 편이다. 가장 최신형 기차라 좌석이며 실내가 깨끗하고 쾌적하다. 티켓예매를 할 때 보니, 수화물규정이 있다. 그래서 큰 짐을 가지고 타야 하는 경우라면 자세히 보고 표를 끊는 것이 좋다.



해외여행객들이 많다 보니 선반에는 소형캐리어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다. 많은 여행짐과 사람들 그리고 많은 사연을 싣고,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여기도 예외가 아니게, 여기저기 대화소리가 크다. 여행의 설렘과 기대감일까...




바르셀로나를 뒤로 하며, 천천히 떠나는 기차창밖을 바라보며 지난 시간들을 되뇌어 보았다.



천재 괴짜로 생각하면서, 남들이 좋다 하니, 가우디 건축 투어 일정을 짰고, 계획대로 한 곳씩 차례로 방문했다. 반짝반짝 빛나던 '카사바트요', 오늘도 성장하고 있을 '사그라다파밀리아대성당', 숲 속의 동화 속 집 같던 '구엘공원', 흐르는 물결처럼 우아했던 '까사밀라'를 직관하며, 가우디의 외적인 명성보다는 그의 순수한 내면으로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 투어를 마치고, 아름다운 그라시아거리와 람블라스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이전과 조금은 다른 몽글몽글한 마음이 생겨났음을 느꼈다. 그것을 딱히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지만, 유형을 알 수 없는 마음의 파도 같은 것이 내가 바르셀로나에 와서 보고 느낀 것이었다.


자치 독립의 염원이 깃든 '카탈루냐 광장', 공사구간이 많아 아쉬웠던 '람블라스 거리', 신선한 해산물과 과일이 맛있었던 '보케리아 시장', 묵직하게 마음을 울리던 중세의 맑은 종소리 '바르셀로나 대성당' 마음속 깊은 소망을 빌고 온 '몬세라트', 천재의 유년작품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피카소 미술관'들에 아쉬움을 담으며 이제 바르셀로나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아디오스~ 바르셀로나!






달리는 차창밖을 바라보니, 디즈니애니메이션 주토피아(Zootopia)의 광고판이 걸린 영화관이 보인다.



기차를 타고 왕복하다 보니 이렇게 철로 주변 벽면에 크고 화려한 글씨체들이 자주 보였다. 글씨체가 약간 풍자스럽기도 해서 처음엔 낙서인 줄 알았는데, 이것 또한 '그라피티(Graffiti)', 그중에서도 특히 '태깅(Tagging)'이나 '피스(Piece)' 스타일이라고 한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 그라나다 같은 도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피티 작가들의 활동 거점이고, 정치사회적 메시지, 혹은 순수 예술적 표현을 위해 그리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이동 수단이기 때문에 작가들의 이름이 최대한 많이 노출될 수 있는 철도 주변의 옹벽이나 방음벽에 많이 그린다. 캔버스처럼 넓고 길게 뻗어 있다 보니 대형 작품을 그리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마드리드 아토차역에 도착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예약한 숙소는 아토차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60 발코니(BALCONIES)'다. 우리의 도착시간이 5시가 넘어 담당자들은 퇴근 후라, 무인으로 체크인해서 들어가게 되었다. 숙소입구 간판은 너무 조그마해서, 구글링 해서 미리 보고 가지 않았더라면 찾느라 애먹었을 수도 있었겠다.


육중한 중세시대의 문을 닮은 출입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메일로 미리 받은 코드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니 작은 엘리베이터 앞에 무인기 한 대가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 방 카드키를 수령한 후, 세 명이 간신히 탈 것 같은 작은 엘리베이터로 2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주변이 온통 검붉은색 마루목재로 되어 있다.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뿌걱거리는 묵직한 마루소리가 난다. 인상이 별로다. 카드키를 꽂고 문을 여니 웬 유리문, 거실과 주방사이에 칸막이가 유리로 되어 있다.



3인이 머무를 거라 스튜디오형을 예약했는데, 1인침대는 거실에 가져다 놓았다.




일단, 짐들을 잠시 제쳐두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주변에 있는 '오븐 모짜렐라 바(Ôven Mozzarella Bar - Atocha)'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MZ의 말로는 이 근처에서 평점이 괜찮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란다.

내부에는 이른 저녁임에도 삼삼오오 사람들이 앉아서 맥주와 피자등을 먹고 있다.



우선 상큼한 레모네이드와 생맥주를 주문한 뒤, 메뉴판을 보고 AI의 도움을 받아 메뉴 선정에 들어갔다. 음료가 빨리 나왔고, 맛도 훌륭했다. 좀 아쉬운 게 있다면 한 겨울인데, 날파리인지 초파리들인지 왱왱거리며 음료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이 영 거슬렸다.


앞으로도 순탄한 우리의 여행을 위하여! 건배!

메뉴 선택권을 MZ에게 맡겼더니, 부라타 치즈를 올린 이베리코 햄피자와 붉은 새우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싱싱한 붉은 새우맛도 좋았고, 화덕피자맛도 괜찮았다.



오븐에 구운 연어 파스타와 염소치즈를 올린 시금치 샐러드도 괜찮았지만, 나는 담아 주는 투박한 도자기 그릇들에 더 눈이 갔다. 접시들이 개성 있다. 음식의 색에 맞추어 잘 어우러지게 담긴 이 접시들이 정감 있다.



게눈 감추듯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가까운 솔광장으로 산책을 갔다. 지나는 거리의 가게들이 크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개성 있고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멋지게 꾸며 놓은 발코니에서 거리의 축제를 구경하면 더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이래서 스페인에 예술가들이 많은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드디어, 솔 광장 도착했다.

마드리드 여정의 시작점이 되는 곳 바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즉 '태양의 문'이라 불리는 광장이다. 이곳이 바로 스페인 전역으로 뻗어 나가는 6개 국도의 기점이 되는 '0km 지점'인 것이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이 표지석을 밟으면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한 번 밟고 찰칵 사진을 찍었다. 다시 올 수 있을까? 시험해 봐야겠다.


Origen de las Carreteras Radiales(방사형 도로의 기점)


딸기를 따먹는 곰 동상, 여행객들이 꼬리와 발뒤꿈치를 만지며, 행운을 빌기 위해 줄을 서있다. 과거 마드리드 주변에 곰과 나무가 많았던 자연환경을 모티브로 제작되었는데, 여행객들의 사랑받는 포토존이다. 우리도 잠깐 대열에 합류했다. MZ가 어딜 잠깐 다녀오겠다고 했다.


마드리드의 상징인 '곰과 소귀나무(El Oso y el Madroño)' 동상- 안토니오 나바로 산타페(Antonio Navarro Santafé)의 작품


낮은 온화해도 저녁때가 되니, 좀 쌀쌀한데, 여전히 오지 않는 MZ! 한참 후에야 손에 젤라토를 3개나 들고 군중 속을 헤치며 걸어온다. 근처에 젤라토맛집이 있어서 갔는데, 줄이 너무 길어서 오래 걸렸다며, 하나씩을 건넨다. 사실은 추워서 안 먹고 싶었는데, 엄마 아빠 맛 보여 줄 거라고, 긴 줄을 서서 사 온 정성을 생각하니, 더 추웠지만 오들오들 떨며 먹어야만 했다. 아! 이제는 딱 누웠으면 좋겠다.


솔광장에서 젤라토 건배


숙소로 돌아가야겠다. 걸어서 10여분 정도면 갈 수 있는데, 배도 부르고, 한기도 느껴지는지 MZ는 택시를 타자고 한다. 골목마다 사람들이 운집해 있어서, 택시나 차가 지나다닐 수가 없다. 하는 수없이 대로까지 나가야 해서 그란비아거리 쪽으로 길을 잡았다.


광장과 지나는 길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나와 공연과 연주를 하고 있었다. 눈과 귀가 호강이다. 여기는 늘 저녁이 되면 거리가 온통 축제 분위기인가 보다. 여행객들이야 좋지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이 좀 피곤할 수도 있겠다.



화려한 그란비아의 밤거리, 아르누보 양식의 멋진 건물들이 즐비하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에 잠시 서있는 느낌이다.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인 거리뷰가 마치 영화 속에서 금방 튀어나올 것 같다. 네온사인의 종류도 다양하다.




거리의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대로로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휘황찬란하게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한참을 둘러 둘러 온 끝에 숙소 앞, 마드리드 예술여행의 시작점인 "에스타시온 델 아르테"역 앞에 도착했다. MZ는 내일부터 시험준비한다며 택시를 타고 기숙사로 떠났다. 자고 아침에 가라 했지만, 자신의 스케줄대로 움직이기를 원하기에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어 배웅하고 들어왔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급모드로 기진맥진!

나는 침대에 털썩, 세수도 안 하고 그대로 깊은 잠에 스르르 빠져 들었다.




다시 또 마드리드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