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그냥 일수도 있지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Attach(붙어 있다)를 많이 할수록 attached (애정을 갖다) 된다. 그리고 그렇게 내 것이 되면 득 보다 실이 더 큰 것일지라도 놓기가 어려워진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영어 강의는 내가 애정 하는 일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영어 하나에만 긴 시간 집중하다 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편향적 사고가 강해지는 걸 느꼈다. 나름 안전한 전환으로 외국계 기업 영어 전문가로 들어갔고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영어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첫 직장이 해외 기업이었기에 soft landing이 될 줄 알았는데 그곳의 환경은 크게 달랐다. 외국계 기업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대기업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영어 전문가로 2년 입사를 할 때 "contract worker"에 대한 나의 정의는 전문 스킬이 있는 고급 인력을 단기 특수 목적으로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근무기간이 짧다 뿐이지 급여도 높고 전문성에 대한 인정도 받고 시작한다. 나의 해석과 달리 대 다수 직원들에게 계약직은 불안정한 근무조건으로 업무 시 정보 공유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고 근무조건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포지션이다. 실재가 어떠하든 다수의 생각을 마주하며 "계약직"이라는 근무조건이 심적으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커리어의 방향이 '일' 대신 '근무조건'에 맞춰졌다. 입사 시엔 2년도 길지만 외국계 회사이고 조직개발팀 업무는 교육의 연장선이니 transition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근무조건에 꽂히고 나서는 정규직 전환만 될 수 있으면 "뭐든 하고 받아들이고 참아 낸다"가 목표가 되었다. 정말 위험한 발상이었다. "The Brain"이라는 책에서 결정을 하는 뇌는 의외로 이성이 아닌 감정을 담당하는 영역이라고 했는데 그때 내가 그랬다.
당시 나는 서른 후반이었다.
이미 영어 강의로는 팀장 포지션에 있었던 사람이 대리 직급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게 사실 담대하다 못해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이었는데 당시 같은 조직에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동료가 있었기에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Specialist에서 Generalist가 되어가는 과정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고 난 정규직 전환 2년을 꽉 채워갈 즈음 퇴사를 결정했다. 실은 정규직 첫해부터 내 자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하지만 head count freeze가 심했던 때 내 자리를 얻기 위해 국내는 물론 regional office와 본사의 승인을 기다리면서 맘 조렸던 일, 정규직이 되기 위해 거쳐야 했던 별별 희한하고 고통스러웠던 경험들로 멘탈이 나간 일 등을 생각하면 맞지 않는 그 자리를 쉬이 내려놓을 수 없었다. 감정적으로 이 회사에서 더 근무하겠다고 한 결심. 그 결심이 맞지 않다는 걸 알았을 때는 외적조건과 이성적인 근거로 스스로의 결정을 미루고 있었다. "어떻게 얻어낸 자리인데." 외국계 금융권의 빵빵한 근무조건, 광화문 직장인이라는 뽀대라는 누림도 나를 망설이게 했지만 그 간 쏟아낸 노력과 시간이 아까워서 아님을 알면서도 죽어라 버텼다. 그리고 심신에 탈이 나고서야 그만둘 수 있었다.
근 4년을 일했던 곳이기에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베여있던 게 있어 회사를 나오고도 회복이 쉬이 되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아서는 전례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맞게 되면서 상당 기간 멍 때림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 시간도 내게는 앞으로 얻을 수 있는 '득' 보다 '실'의 경험에 집중된 커리어 결정을 하게 했다. 이전 글에도 언급했지만 내 생각과 마음이 오랫동안 향해있는 일들은 언젠가 어떠한 형태로든 표출되게 되어있다. 아닌 것 같은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던 나는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이 빠듯한 날엔 몇 줄이라도 적었다. 그렇게 생각의 무게를 내 머리에서 외부 종이로 옮겼다. 그렇게 글이 쌓이고 생각이 정리되면서 감정 위에 이성적인 사고가 덧 입혀지기 시작했다. 아닌 건 아니다. 90%의 Yes와 10%의 No가 60%의 Yes와 40%의 No와 다르지 않다. No가 1%라도 있으면 No이다. 그리고 그 'No'가 반년을 넘어가면 진지하게 'No'를 대면해야 한다. 겁이 몹시 나지만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현타가 오는 날마다 해소가 아닌 해결을 위해 글을 썼다.
일기장에도 적고 플랫폼에도 적고 쪽지에도 적고 커피숍 냅킨에도 적고 수시로 적고 'No'를 대면했다. 그리고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상사에게 현재의 어려움과 내가 생각하는 대안을 들고 가 도움도 요청했다. 그리고 또 적었다. 계속해서 적었다. 그리고 적는 날들이 늘어날수록 내 생각도 또렷해져 갔다. 실행에 옮기는 게 두려워 회피하고 싶지만 마주했고 마음의 결정이 내려졌다. 정리된 단정하고 단호한 생각을 상사에게 말씀드렸다. 준비된 다음이 없는데 마음이 가볍고 평온해졌다. 퇴사 의사를 전달하고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어느 게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Trade Off가 있을 뿐. 현재 있는 곳에서의 떠남이 맞는다는 게 확인되었지만 새로운 길에 대해 겁이 안 나는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어른이었다는 사람은 없다. 두렵지만 닥치면 어떻게든 해내게 된다."라는 문구를 붙잡고 오늘도 성실하게 하루를 채워나갈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