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 현 직장에 사표를 냈다. 여러 이유들이 있었지만 당장 내일 출근도 버거운 업무량의 오랜 지속과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진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이 가장 컸다. 일손 부족한 환경에서 업무 인계 준비까지 성실히 진행하던 중 경영진 중 한 분이 미팅 요청을 주셨다. 사직서 제출 이후 이미 두 분의 경영진과 여러 차례의 exit interview가 있었고 업무 인계가 진행 중이었기에 마지막 인사를 직접 주시려나 했다. 만나 뵈니 이렇게 떠나보내면 후회로 오래 남을 것 같아 직접 만류하러 오셨다고 했다. 퇴사가 10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어떤 제안을 하실 수 있기에 이 시점에 퇴사 번복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셨을까? 승진 및 연봉 인상은 내 협상카드가 아니었다. 인력 충원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인력 충원으로 인한 업무 분담'이 quitting(떠날지) or staying in(머물지)에 대한 나의 조건이었다. 이걸 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가 talent pipeline에 들어가 있으니 이다음의 직급에 대한 그림도 그리며 사업 계획과 조직도 구상을 해 보라고 하셨다.
Nike 창업자 Phil Knight는 자서전 Shoe Dog에서 "The cowards never started and the weak died along the way -that leaves us."라는 말을 했다. 어찌 보면 내 상황과 비슷했다. 비즈니스가 커지고 조직의 방향과 인력의 변화가 잦아지면서 기존의 직원들은 지쳐갔고 새로 합류한 전문가들은 날카로운 이성과 노련함으로 시작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시점에 발을 뺐다. 겁쟁이이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더 경험했거나 많이 알기에 다 떠나가고 나만 남았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날따라 유독 이 말이 머릿속을 오래 맴돌았다. 최고 경영자의 입장은 내 입장과 또 다르겠지. 보는 시각 자체가 다르니 단순히 나 혼자 남아있다고 윗 직급을 줄 수는 없겠지. 그렇지만 승진이 아니어도 사람은 충원해 주실 수 있지 않았나? 왜 이제서야?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을 나 혼자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유지에 대한 고마움 보다는 성장에 대한 계획을 요청하시다니. 그것도 내가 진급하게 되면 이런 구조로 또 바뀔 것 이라는 얘기를 전하시면서.
분명 내가 목소리를 낸 부분이 받아들여졌는데 왜 상쾌하지가 않았는지 주말을 넘기고 나서야 알게 됐다. 사람도 안 바뀌는데 조직이 바뀔 리가 있나. 내 의견이 받아들여졌다는 것에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다 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옵션이 없는 상황이라는 게 뻔히 읽히는데 끝까지 욕심 가득한 제안을 하시는 게 참...그렇기도 했다. 결론은 나는 더 근속하기로 했다. 떠남 대신 같은 곳에서 한 뼘 더 성장해 보기로 했다. 상위 직급에서 배울 수 있는 시야와 업무는 또 다른 영역이기에. 워낙 퇴사에 대한 결심이 확고했던 터라 이 결정이 맞는 걸까?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라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들기도 했지만 내가 가장 원하던 인력 충원과 여러 고민에 대한 해결을 약속받았기에 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만큼 결정이 오래 지체된다면 결단으로 끝내야 한다"라는 어떤 이의 현답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