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1.03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라는 문제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guestion이라는 햄릿의 독백처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우유부단함으로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먹는다는 것은 생명으로서 가장 기본적 행동이며 원초적 본능이다. 이 뿌리 깊은 본능을 제어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짐작된다.
30여 년 전 미국을 처음 갔을 때 처음 보는 미 대륙의 광활함 , 도시의 마천루보다는 한국에서는 볼 수없었던 비만한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다. 그냥 뚱뚱한 정도가 아니라 운전석에 앉으면 운전대에 몸이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운전자를 보고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스럽게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인류를 크게 나누어 보면 소금발효 민족과 설탕발효 민족으로 나눌 수 있다. 추위와 싸워야 하는 북반구에 위치한 민족들은 짠맛 나는 소금으로 간을 해 먹거나 음식을 발효해서 저장하여 먹는 것으로 생존한 반면에 더위를 피해야 하는 남방민족들은 당분을 먹거나 설탕을 발효 저장하여 몸을 시원하게 해서 생존했던 것이다.
이렇게 살기 위해 먹는 먹거리는 기후와 체질에 맞게 저절로 디자인되고 대물림되는 조상의 지혜가 음식에 녹어있는 소울푸드이다. 이에 비해 먹기 위해 사는 음식에 대한 태도는 다분히 글로벌화된 자본주의가 낳은 현대의 산물이다. 클릭 몇 번으로 집까지 배달되는 자본화된 먹거리 앞에 정말 굴복한 현대인들은 오늘도 내일도 좀 더 맛있는 것이 없을까 고민하면서 그것을 식도락이라고 부르며 점점 더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사는 쪽으로 기울어 간다.
글로벌화되고 자본화된 먹거리 세상의 승자는 달고 맵고 튀기고 볶고 굽는 자극적이고 달달한 야식배달 음식이다. 한번 이 맛에 중독되면 혀가 기억하고 뇌리에 박혀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자고 난 다음 아침 식사가 꿀맛이어야 함에도 야식 정크푸드를 걸신들린 듯 먹고 난 다음날 아침은 먹으래야 먹을 수가 없다. 이렇게 살기 위해 먹어야 할 먹거리가 먹기 위해 사는 자본화된 먹거리로 바뀐 오늘날 우리의 몸은 먹거리를 앞에 두고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전장의 장수 같은 결연함으로 살지 않으면 이 먹고사는 유혹으로부터 헤어나기가 어렵다.
양약은 고구이나 이어행이요 , 충언은 역이 이나 이어행이라는 사기에 실려있는 말처럼 혀에 달달한 음식은 귀에 아부하는 말이 안하무인의 행동을 낳듯이, 몸에 독을 만드는 시발점이 되는 것이다.
된장독 간장독 고추장독에 깨끗한 소금을 뿌려 넣고 몇 해를 넘겨 발효시켜 만든 양념을 버무려 총각김치를 담근 우리들의 어머니 할머니 덕분에 오늘도 살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고 먹기 위해 사는 자본화된 먹거리에 우리들이 중독되지 않고 맛을 넘어 멋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