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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Jan 02. 2024

무위자연의 세계란 무엇인가



2024.01.02

무위자연이라는 말을 동양고전에서 많이들 하지만 이에 대한 해석은 제 각각이다.

먼저 무위(無爲)라는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자. 행위가 없다는 말인가?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는 의미에 비추어보면 행위가 없이 스스로 그러하다를 무위자연의 글자 그대로의 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자연에서 나고 자란 생명은 누가 누구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 없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과같이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해서 움직이지 필요한데도 움직이지 않는 것도 없고 필요 없는데 움직이는 것도 없는 것이다.

이 자연의 섭리에 의해 살아온 우리 인류가 문명이라는 가상세계의 메타버스에 올라탄 이래 왜곡되기 시작하는 생체 리듬과 뇌정보 리듬의 부조화를 경험하고 이 리듬을 조화롭게 맞추고자 하는 노력이 건강이라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현대인의 바이오리듬은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

무위자연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한시도 떼래야 뗄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몸속 세포 하나하나에 숨 쉬고 있다. 필요에 의해 이루 셀 수없는 반응과 동작 동화와 이화작용을 통해 기어이 맡은 바 책무를 완성하는 미시계의 세포차원의 생명활동을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안하무인격으로 무시하고 폄훼한다. 그러나 무위자연을 닮은 세포차원의 헌신이 없다면 우리는 한순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무위는 행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행위가 있었다는 말이 아닐까?

이처럼 스스로 그러한 미립계 생명의 세계에서는 무위라는 말이 무수히 많은 행동을 의미하지만 거시계인 인간이 만든 세상에서 무위는 무위도식과 같이 인간 세상에 기여도 없이 식량만 축내는 사람을 지칭하면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절대악이자 죄로 각인시켜 세상 속의 인간을 궁지로 내모는 것이다.

무위에 인위가 가해지면 무위는 보이지 않고 인위만 남는다. 인위로 구축한 문명은 거시계의 시각문명을 건설하면서 찬란하고 화려함을 뽐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위자연을 닮은 생명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인간의 손길을 움직여야지 보수가 되고 유지가 되는 업으로 가득한 세계이다. 너와 나가 하나가 되는 생명세계의 일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인위가 가해진 문명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내어야 하는 현대문명은 업과 업이 쌓이는 행위의 연속이다. 서로가 만나 하나가 되는 생명계의 무위자연의 원리를 선택하여 업장소멸의 길로 일로 매진 한다면 보다 풍성한 인생이 우리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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