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조식 문장과 서술식 문장, 과학과 인문학의 간극

by 윤해



2023.11.30

과학은 현대의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말이다. 중세종교 시대를 마감하고 신의 자리를 대체한 과학은 이제 모든 영역에서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우리 정신과 육체를 지배하는 반열에 올랐다.

나누어서 배운다는 과학정신은 전지전능한 신의 피조물인 우리 인간을 종교로부터 해방시킨 혁명적 사건이었으며 자연과 인간사이에 있었던 신의 존재를 밀어내고 자연과 인간이 직거래를 시작하여 비로소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를 이해하는 단초가 된 토대이다.

행성 지구를 너머 태양계 나아가 은하 그리고 우주까지를 파고들기 시작한 우리 인류는 그 아득한 스케일에 그저 압도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굴의 정신으로 이 난제를 타개하고 한 발짝씩 나아간 인류의 동반자가 바로 나누어 보고 쪼개어 보고를 무한 반복하여 거시계의 우주로부터 미시계의 미립자까지 최소단위를 밝혀낸 자연과학이라고 이야기해도 큰 무리는 없다.

학부시절 교양 선택과목으로 문화사를 수강신청하여 한 학기를 배웠다. 모두가 인문학과 학생인데 나만 공대에서 넘어와 수강을 하려니 어색하기도 하였지만 문화사를 꼭 배우고 싶은 마음에 꼬박꼬박 출석하여 강의를 들었다.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렇게 흥미롭게 공부는 못했지만 중간고사를 거쳐 학기말 시험을 보고 나서 문화사 과목의 성적은 만점이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그해 여름방학을 신나게 놀았다. 20박 21일의 무전여행을 마감하고 학교로 복귀한 나는 문화사 과목의 성적을 보고 경악했다.

66점, 내가 수강한 학점 중 최하위였으며 이 점수 하나 때문에 장학금도 날아갔다.
너무나 의문스러워 교무처를 통해 알아보니 그 당시만 해도 수기로 기록한
숫자를 잘못 합산한 교수의 오류로 드러나 어렵게 교수와 동행해 바로잡아 정정했으나 시간을 지체해 장학금 사정기간을 경과하여 장학금은 이미 날아간 상황이었다.

장학금은 나보다 어려운 동기가 받았다고 위안하고 넘어갈 수 있었는데 정작 놀란 것은 수정된 점수가 86점이라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만점이라고 생각하고 써낸 내 답안지가 왜 86점 밖에 못 받았을까 하는 의문은 그 후에도 떠나지 않았다.

공대생은 필연적으로 실험보고서를 작성하듯 또박또박 떨어지는 개조식 문장에 체화되고 훈련되어 있다. 이 공대생의 한계를 인문대 교수는 내용을 보기도 전에 서술방식에 불만을 품고 마치 피겨선수가 난이도에 따라 낮은 기술을 연기하면 아무리 잘해도 만점을 받을 수 없는 이치를 몰랐던 그 당시 나로서는 문화사가 그야말로 문화충격으로 내게 다가왔다.

개조식 문장의 기술점수는 서술식 문장을 정식 문장으로 이해하는 문화사 교수에게는 기술점수가 낮은 연기를 구사하는 이류 피겨선수쯤으로 인식되었으리라 짐작한다. 어쩌면 내용보다는 형식을 보는 고정관념의 전형을 보는 것 같아 그 당시 많이 안타까웠다.

세상은 바뀌어 개조식을 서술식으로 무난하게 바꾸어주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서비스가 야단이다. 혹자는 열광하고 혹자는 진위여부 검색엔진까지 돌릴 태세이다. 무엇이 옳은지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인간으로서 고유한 색깔과 개성이 있는 존재라는 이야기만큼은 확실히 해두고 싶다.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라는 유행가 가사가 래하듯 말과 글로 생각을 나누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굴과 같은 문체가 아니라 마음과 같은 내용임을 더더욱 상기하면서 혼란한 쳇 GPT 시대에 더욱더 절실하게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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