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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세상의 길 인간의 길

by 윤해



2024.01.09

길은 참 다양하다. 지름길로 가는 사람, 돌아가는 길로 가는 사람, 둘러가는 길로 가는 사람, 모두가 자기의 선택이고 취향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일어나는 논쟁의 팔 할은 이 선택과 취향의 관한 문제이다. 누구는 이리 가야 한다고 누구는 저리 가야 한다고 그 순간은 절대로 확인할 수 없는 논쟁을 밑도 끝도 없이 하고 사는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과연 정답이 있기나 한 것일까? 정답이 있을 수없는 질문을 가지고 세상을 살다 보니 이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기도 하고 계급이 깡패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길을 포기하고 세상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다.

사람으로서 우리를 보면 우리는 유연한 존재이다. 외통수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가 아니라 적어도 동서남북, 전후좌우, 춘하추동 정도는 알고 움직이므로 유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이 만든 조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조직이 만들어 준 법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의 판단은 법에 부합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고 스톱을 반복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세상 안에 인간의 모습으로 한 생을 살기 위해서는 너와 나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정보가 너와 나 그리고 우리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인간은 관계적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처럼 우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로서 사람의 길을 가기도 하고 혼자서 사는 것이 외롭고 고달프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세상 속으로 들어가 인간이라는 관계적 존재로서 한 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이것은 옳고 그른 시비의 문제가 아니라 하고 말고의 선택의 문제이다.

이 감각 하나만이라도 가지고 한 생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 인생의 입법자로서 후회 없는 한 생을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 보니 가족이 정해졌고 성장해 보니 친구가 정해졌고 먹고 살려다 보니 직장이 정해졌으며 나이가 들어 힘이 빠지니 은퇴로 내몰렸다고 푸념한다. 세상 속의 인생행로에서 자신의 뜻 자신의 의사 자신의 꿈은 과연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때그때 마다 보다 좋아 보이는 길로 가는 땔감으로 다 써버렸는 지도 아니면 관계적 존재로서 나 한 몸 희생하여 주위를 밝히는 불쏘시개로 나의 꿈 나의 길을 저당 잡혔는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그 길이 사람의 길이던 세상의 길이던 인간의 길이던 내가 정하고 선택하였음을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얼렁뚱땅 사고를 하는 즉시 우리는 우리 인생의 최대 피해자가 되어 내가 내 길을 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강요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한 생을 산 것으로 우리의 인생을 왜곡하면서 희생자 코스프레라고 하는 빠지기 쉬운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이러한 프레임에 갇히면 개인이던 조직이던 국가이던 과거에 대한 후회와 회한 그리고 원망으로 가득 차게 되고 지금의 현실을 보지 않게 된다. 우리는 길을 갈 때 그냥 막 가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 인생이 모여 어느 길로 갈지 결정했고 더구나 집단이 조직이 세상이 결정한 길은 더더욱 합목적적으로 그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이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는 길은 결과가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우리가 선택한 길이라는 자각을 잊지 말아야 그 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주인으로서 한 생을 살 수 있지 않겠나

사람의 길 세상의 길 인간의 길 가야 할 길도 많지만 그 모든 길에서 나는 주인으로서 선택했다는 자부심만 가져도 그 사람은 결과에 관계없이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마이웨이를 살아간 인생의 입법자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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