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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에게 주어진 위험한 물건

by 윤해



2024.01.10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적으로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깔리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사라는 말도 있지만 전후세대인 우리들에게는 그저 강 건너 불구경같이 보이고 들리는 것은 겪어보지 못한 경험 탓이 아닐까?

우주를 돌진하면서 날아다니는 은하성단 그 은하성단의 변방에 위치한 자그마한 별 태양 그리고 태양계를 돌고 있는 행성 지구를 인생에 비유하면 46세의 지구 아주머니가 5년 전 마당에서 채소 텃밭을 꾸리기 시작했고, 1년 전에 활동하던 공룡형이 반년 전에 실종되었으며, 열흘 전에 갓 태어난 소인들이 대규모의 온실 재배를 시작했다고 후지이 가즈미치는 그의 저서 '흙의 시간'이라는 책을 통해 멋지게 비유했다.

이렇게 지구를 한 생에 비유하면 열흘 전에 태어난 소인, 인간들이 티격태격 고군분투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지구 아주머니의 시각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장난감 같은 무기를 가지고 위험한 놀이를 하는 철부지 소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소인인 우리는 이 상황이 너무나 심각하다. 공맹이 아무리 인의와 왕도정치를 외쳐도 노자가 홀로 도가도 비상도를 가르쳐도 이 소인들이 수 틀리면 소인들의 위험한 장난감이 어려운 전쟁과 같은 난리를 불러오는 작난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래서 소인들이 꾸리는 인류의 역사는 전쟁사가 되는 것이다.

지구에 사는 우리가 빙하기와 빙하기 사이에 간빙기를 살고 있듯이 인류의 역사도 전쟁과 전쟁사이의 잠깐의 평화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평화, 작렬하는 한낮의 태양을 뒤로하고 잠시잠깐 맛보는 시원한 저녁에 부는 바람 같은 평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적 평화마저도 만끽하지 못하고 서로 으르렁대며 평화를 전쟁같이 살고 있는 열흘 전에 나타난 소인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거시사도 이럴진대 세상 속에 놓인 한 개인의 미시사는 더할 나위가 없는 것 같다. 십수 년 전에 방영된 TV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안 계심(괘씸) 역으로 출연한 나문희 배우의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야'라는 전쟁을 겪은 세대가 또 다른 일상의 가족 간의 전쟁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 내뱉는 독백 같은 대사에서 우리는 전쟁과 같은 거시사 뿐만 아니라 간간이 찾아오는 평화로운 일상마저도 갈등을 이기지 못해 난리법석을 떠는 전쟁과 같은 미시사로 치환하는 어이없는 운명과 마주한다.

우리 인류의 역사는 전쟁과 전쟁을 준비하는 역사로 점철되어 있고 70여 년을 넘는 휴전기간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늘 상존하는 전쟁발발의 틈바구니를 딛고 일어선 감추어진 영웅들의 대서사가 전쟁을 준비했던 우리들의 70년에 그대로 녹아 있다.
혹자는 말한다. 이제 전쟁이 끝났으니 서로 사이좋게 평화로운 미래, 희망의 파랑새를 노래하며 더불어 살자고. 그러나 그러한 과거도 없었고 그러한 현재도 보지 못했고 그러한 미래도 기대할 수 없음을 준엄한 인류의 역사가 웅변한다.

평화를 노래하면 반드시 전쟁을 부르고 전쟁을 준비하면 평화가 다가오는 지구에 갓 정착한 소인들의 거시사, 전쟁의 패러독스를 기억할 때 그나마 찰나적 평화라도 누리는 소인들의 미시사에 이제 수긍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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