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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赤裸裸)하게 드러나는 민낯

by 윤해



2024.01.11

발가벗고 발가벗고 발가벗었다. 적나라(赤裸裸)의 사전적 의미다. 얼마나 껴 입었으면 세 겹이나 벗어야 했을까? 그리고 무슨 옷, 아니 허울을 그렇게 뒤집어쓰고 살았을까?

나를 모르는 아부지를 선택하고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살다가 생년월시 네 기둥 사주에 맞추어 세상에 나올 때 우리는 나라는 진아의 실체에 다만 몸이라는 옷 한 벌을 입고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초유를 먹기도 전에 배넷저고리라는 세상의 옷을 먼저 입고 어머니의 품 안에서 잠자고 먹고 하면서 한 생을 시작하는 것이다.

사랑의 기로 뭉친 애기가 자라서 세상에 나오면서 입었던 옷, 몸을 키우고 몸집이 커지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옷을 하나하나씩 입는다. 학교에 가면 교복을 입고 학교를 파하면 사복을 입고 군대를 가면 군복을 입고 일을 하면 작업복, 운동을 하면 체육복 잠잘 때는 잠옷을 입는다. 어쩌면 인생은 옷을 입고 벗는 동작의 연속이라는 기분이 들정도로 우리 일생에서 차지하는 착의와 탈의의 비중은 상상을 초월하며 실제로 의식주에서 의가 맨 앞에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 살면서 수행하는 직업에 따라 우리는 그에 걸맞은 옷을 입는다. 사복은 개인의 취향과 개성에 맞추어 자유롭게 입기도 하지만 공적인 자리에 오르면 대개 거기에 걸맞은 복장을 해야 만 한다. 예를 들면 법관은 법복을 입고 군인은 군복을 입으며 회사원도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일이나 공직에서 퇴직할 때 옷을 벗는다라는 말로 퇴직 인사를 대신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입는 옷은 자연에서 사는 여타 다른 생명체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독특한 인간 만의 특징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도 의식주에서 먹고 자고는 하지만 '의', 스스로 옷을 지어 입고 벗는 것은 오직 만물의 영장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행동인 것이다.

이처럼 동물과 구분되는 사람의 옷은 문명을 일으키면서 자리를 만들고 자리에 걸맞은 옷을 입히기도 옷을 벗기기도 하면서 세상의 온갖 권력과 부와 명예를 향한 자리다툼이라는 세상의 이야기가 우리들의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일념 하나로 영향력이 있는 자리로 끊임없이 옷을 바꿔 입어가면서 카멜레온과 같은 변신을 꾀하는 처세술의 달인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하나 입고 있던 옷이 벗겨지면서 적나라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권력자의 추악한 민낯을 보는 것이 오늘날 신종 관음증으로 굳어지는 세태에 씁쓸한 조소만 흐를 뿐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우리 눈앞에 등장하는 권력자의 정체를 당연히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온갖 허울로 뒤집어쓰는 유력자들의 옷은 갑옷으로 바뀌고 방탄복으로 변한다. 우리는 정체를 알기 위해 권력자를 발가벗기려 하고 발가벗기려고 하면 할수록 더 두꺼운 방탄복을 움켜쥐고 만 가지 이유를 대면서 자기의 정체가 발가벗겨져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 발가벗지 않으려는 권력자의 옷이 봄 볕에 눈 녹듯이 발가벗겨지면 그 추악한 실체와 민낯은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것은 안갖 힘을 쓰는 강력한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하고 결국에는 따뜻한 햇볕이 스스로 나그네의 옷을 벗게 한 이치와 닮아 있다.

다만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은 갈수록 권력자의 뻔뻔함이 상상을 초월하여 뻔뻔한 권력자의 옷을 벗기기 위해서는 남극의 빙산을 녹일 정도의 강한 햇볕이 필요했고 그것이 기후변화를 가져온 지구 온난화의 원인 중에 하나는 아닌지 말도 안되는 엉뚱한 상상을 해보며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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