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6
자병자치(自病自治)라는 말이 있다. 자기의 병은 자기가 다스리고 고친다는 의미이다. 지금의 시대상과는 너무나 다른 말이라 아마 대부분의 환자들에게는 요원하고 아득하게 들리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
나는 한 때 의대에 진학하지 않았음을 후회한 적이 있었다. 한 세대 전의 대학입시에서는 이과에서는 산업보국을 위한 인재로서 엔지니어가 대세인 시대 상황에서 공대와 의대가 인재를 양분하여 진학하는 바람직한 기풍이 그래도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명문대 의대는 어렵겠지만 상위권 공대를 갈 성적이면 집에서 학비만 받쳐 주면 일반적인 의대 진학이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 아니었다.
물론 공대나 의대나 적성이 맞고 하고 싶어야 하는 것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진로는 운명처럼 달라진다. 공대에 입학한 내가 아부지의 와병으로 일 년에 거의 육 개월은 아부지 곁에 간병을 하기 위해 병원에 있다 보니 전공인 공대에 가 있는 시간보다 의과대학 부속병원을 전전하며 회진하던 의사들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이럴 거면 내가 의사가 되어 아부지를 돌보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문득 들었다.
의사는 기본적으로 고단한 직업이다. 육친이 아닌 남의 몸을 만지고 치료하는 일은 남다른 직업윤리와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더구나 공대를 나와 기계를 다루고 시스템을 안착시키는 와중에서도 더듬더듬 서툴게 해서 기계를 손상시키거나 시스템에 중대한 하자를 발생시키는 일도 허다한데 그 대상이 생명을 가진 사람인 경우 의사가 받는 스트레스는 아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렇게 병 고치기가 어려우니 병 고치는 의사 아니 병을 고치겠다고 나서는 의사는 점점 줄어들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비위를 맞추며 통증을 병으로 둘러치고 병명을 양산하면서 병을 만드는 병원은 우후 죽순처럼 번창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의료의 현실이다.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전쟁의학으로서 심각한 외상과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환자들을 수술과 페니실린 그리고 백신 접종을 통한 예방의학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기적을 시연한 서양의학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전시의 명성을 그대로 간직한 체 의료의 주인공으로서 수많은 병원을 세워서 수많은 인력과 설비 장비를 투입하여 국민 보건과 결합한 보건의료로 영역을 확장하고 의료법과 건강보험이라는 족쇄이자 날개를 달아 외상과 응급환자뿐만 아니라 내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등 수많은 과로 세분하여 전문의라는 명목으로 전체적 치료가 아니라 부분적 진료를 통해 수많은 병명을 양산하며 전쟁의학에서 평시의학으로 탈바꿈을 시도한 결과가 지금 우리의 보건의료 현장이라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전시의학이 평시의학으로 탈바꿈되어 국민의 의료뿐만 아니라 보건 나아가 성형 미용까지 분야와 영역을 확장하고 날로 번창하고 있는 현대의료는 자본과 결합하여 서울 빅 5 대형병원으로 전국의 모든 환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지방의료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는 개업전문의들이 앞다투어 필수의학과는 헌신짝 버리듯 버리고 돈 되는 피부 미용 성형으로 달려가는 의료의 난맥상을 초래하였다.
이러한 의료의 총체적인 난맥상은 의료대란을 주기적으로 발생시켜 전시에 생명을 구하는 전쟁의학으로 출발한 우리의 의료가 평화시에 도리어 의료가 전쟁과 같은 대란을 일으키는 역설적 상황에 온 국민이 직면해 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고 위로받아야 하는 인류로서 기본적 인권이 거미줄 같은 법망과 사회 시스템으로 왜곡과 덧칠이 가해진 현대의료의 현주소는 자병자치(自病自治)를 까마득히 잊어버린 현대인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와 급하게 몸이 아파 치료를 하려고 하면 병을 치료해 주는 의사를 찾을 수 없고 길거리를 헤매다가 골든 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고, 마음이 아프고 몸이 허하고 탈이난 제 발로 불원천리 srt를 타고 1박 2일 빅 5 병원을 찾아 병명을 확인하고픈 만성환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국가 기간망 srt가 매진되는 어처구니없지만 그들에게는 절실한 의료대란이 일상이 된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