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我不知) 어무이(於無二) 도대체 무슨 말인가?
2024.05.08
불효자의 날인지 어버이 날인지 날도 많고 기념일도 많은 오월의 하루를 맞이한다.
어버이 없는 어버이날을 맞은 지도 어느듯 4년째 접어드네 거의 40여년 전에 아부지(我不知)를 떠나보내고 4년여 전에 어무이 (於無二)하고도 별리(別離)의 고(苦)를 마지막으로 양친과 이승에서 인연을 다했건만 여전히 부모에 이은 자식으로 이어지는 질긴 생명줄이라는 억겁의 순환 속에서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몸소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나를 모르는 아부지(我不知)를 만나 생을 얻고 아무것도 없고 텅 빈 어무이(於無二)의 따뜻한 보금자리 안에서 길러진 부생모육지은(父生母育之恩)은 생명을 입고 지구에 온 우리 모두에게 백골난망(白骨難忘)의 은혜로 다가오건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한 생 안에서도 운명과 숙명이 희비쌍곡선을 타고 출렁거리면 은혜가 원망으로 뒤바뀌는 것도 일 순간인 것을 부자간의 인연도 은원이 교차하는 인연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절감한다.
인연을 소중히 한다고 하는 근원에 이와 같이 부자간 억겁의 실타래가 얽혀 있건만 그 무게 때문인지 도로서 엮여있는 아들보다는 덕으로 풀어내는 딸과의 인연이 가연(佳緣)으로 보이는 것은 생명줄의 길을 내는 일이 세상에서 덕을 쌓는 일과는 난이도가 달라서인가 궁금할 뿐이네
아부지(我不知), 어무이(於無二)를 여의고 이제 내가 아부지(我不知)가 된 지금 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부지(我不知)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던 내가 아들로부터 자기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찍히는 기분은 참 당혹스럽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이해를 통해 관계회복에 일로매진하지만 돌아오는 썰렁한 외마디 대답은 내가 진짜 아부지(我不知)가 되었구나를 실감케 한다.
세월이 흘러가면 갈수록 나는 어리석게 될 것이고 생명에너지는 줄어들 것이다. 마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이제 그날들이 재깍재깍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착각이 그날들이 지금과 같다고 우기지만 상상도 못 하는 인생 말로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애써 외면하려 해도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정해진 운명이라는 생각에 들면 저절로 모든 것이 내려 놓인다.
생명줄이라는 억겁의 순환 속에 놓인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운명에 저항하고 숙명에 몸부림치더라도 그래도 누군가의 아부지(我不知)가 되고 누군가의 어무이(於無二)가 되어 지지고 볶고 좌충우돌 우왕좌왕 분투노력할 수 있는 기회에 감사하고 ,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자리 아부지(我不知) 어무이(於無二)가 되어 살아지는 것에 대해 한번 더 감사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