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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해 May 09. 2024

Start now get perfect later



2024.05.09

어떤 일이나 업을 도모할 때 우리는 계획부터 완전하게 짜고 그 계획에 따라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완벽하게 사업이나 일처리를 마무리하고자 희망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나 업이 얼마나 있으며 실제로 존재하기나 한 건지 매우 궁금하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바람을 넘어 현실로 다가올 때 우리는 퍼펙트하다고 열광하며 엄지 척을 치켜올리면서 열광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인생을 압축한 스포츠 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나며 야구에서는 9회까지 어떤 타자도 1루를 밟지 못하고 게임이 끝나는 경우 완투한 투수에게 퍼펙트게임을 했다는 노히트 노런을 넘어서는 투수로서 가장 영광스러운 평생의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치려고 하는 자와 막으려고 하는 자 사이의 긴장은 비단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걸쳐 비일 비재하게 일어나는 삶의 방정식이다.

이 삶 안으로 들어가 보면 후성유전학의 연구대상인 우리 인간의 탄생부터가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하다.  인과와 수억 겁의 연을 통해 스스로 부모를 찾아온 완전함과는 별개로 그 진아가 자아를 만들고 자아가 우리 몸을 만들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우리는 다른 생명체와 견주어도 불완전한 상태로 탄생되는 출발선상의 유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 즉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생존능력이 매우 부족한 상태로 태어난 생명이 바로 우리다.

이렇게 유약하고 완성되지 못한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의미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고 이 성장의 여지가 후성유전학의 가장 큰 이론적 토대가 된 진화의 여백을 제공했으며 우리에게 제공된 이 여백을 잘 활용하여 그 어떤 생명체도 도달하지  못한 문명의 정점으로 우리 인간을 밀어 올렸던 것이다.

한 개체로서의 인간이나 그 인간이 모여 만든 집합체인 사회이거나 불완전하게 출발하여 살아가면서 완벽해져 가는 진화의 도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즉 일단 출발하고 가면서 완벽해지는 것은 진화던  문명이던 지구상을 살아가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근본원리이다.

농업혁명 이후 문명의 메타버스에 올라탄 지도 1만 년이 넘어가면서 우리는 어느덧 문명이라는 관성에 내몰려 우리 인간이 환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크나 큰 착각 속에 빠져 있는 느낌이다. 이 느낌이 느낌으로만 끝나면 좋을 텐 데 자그마한 성공에 도취된 인간은 공간을 넘어서 시간마저도 통제할 수 있다는 헛된 착각을 하고 나아가 우리가 하는 일이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져와 매사에 완벽의 기준으로 세상을 평가하고 단죄하는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다.

완벽이란 준비가 완벽해지려고 노력하여 만반의 대비를 함에 있는 것이지 일과 업을 하면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환경의 변화마저 고려하여 결과가 완벽해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과 꿈인 것이다.
여전히 이상과 꿈의 경로에 놓인 우리들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뛰어가면서 완벽해지려고 분투노력하는 여백을 가진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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