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5
백 인 백 색이다. 백 사람이 있으면 백 사람 다 성향과 색깔 호불호가 다르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다 다른 사람 사이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는 관계를 단절하고 외톨이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원적 의문에 봉착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논리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라는 대척점에서 스케일 자를 가지고 이쪽으로 한 눈금 저 쪽으로 한 눈금 씩 옮겨가면서 방침을 정하고 이에 따른 처신을 해야 체신이 서고 망신을 면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보는 잣대가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하고 혹여 중심이 흐트러져 있으면 재 빨리 바로잡아 중심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이 아는 것이 힘이요 ,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인생을 살아보면 볼수록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처럼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에서 누구나 열심히 뉴스를 듣고 분석도 하며 틈틈이 시간을 내어 독서도 하고 전문가의 의견도 들으면서 어떤 사안에 대해 알아 나가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것이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고 노출빈도가 높은 곳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이러한 대중의 성향을 고려하여 위정자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곳에 성동격서 전략으로 요리 재료를 올려놓고 서로 갑론을박하며 힘을 쏟게 하여 정작 중요한 현안은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가면서 물타기를 하는 것이 매국적 위정자들이 흔히 하는 수법이다.
고금에 걸친 이러한 위정자들의 기만에 속지 않으려면 알아야 하며 아는 것도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사안의 경중을 따져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온갖 정보가 난무하는 정보화 사회에 산다는 것은 산해진미 앞에서 무엇을 선택해서 먹어야 할지 헤매다가 굶어 죽는 이치와 닮아있다.
감당할 수 없는 정보 앞에서 팔랑귀를 가지고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정보의 경중을 구분 못하고 탈정보에 깔려서 허덕이는 모습이 현대인의 자화상 인지도 모른다.
천인공노할 만행은 말 그대로 천 사람이면 천 사람 다 공통적으로 분노의 감정으로 대응해야 함에도 매국적 위정자의 물타기에 만행의 피해자가 지금 나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분노보다 앞서는 세상은 악세이다.
이러한 악세를 정상 세상으로 되돌리는데 필요한 시간은 늘 긴박하다.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오려는 승객에게 주어진 골든 타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 것처럼
서해공무원 피살 사건은 누가 봐도 천인공노할 사건이지만 피해자가 한 개인이라는 이유로 매국적 위정자가 차리는 식탁에서 내려왔고 왜 식탁에 올리지 않느냐는 거센 항의를 받고서야 폐기된 요리 재료를 여기저기 함부로 굴리고 난 뒤 유통기한을 줄이고 늘려 MSG를 잔뜩 뿌려 온 국민의 식탁에 올린 그야말로 국민을 두 번 죽인 사건에도 덤덤한 국민이 사는 국가가 바로 악세의 증거다.
이처럼 번지 수가 다른 선택적 분노, 박자가 어긋나고 골든타임이 지나간 분노를 반기는 매국적 위정자를 그냥 두면 그야말로 그 나라는 절단 나는 것이다.
나라가 절단된 지 80년이 다가오고 이제 그 절단된 나라 안에서 마저 천인공노할 사건을 두고 같이 분노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서글픈 일이다.
마틴 니묄러의 고백을 통해 나치에 저항했던 디트리히 본 회퍼목사의 다음과 같은 외침에 귀 기울여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나치가 공산당을 끌어내렸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노동조합원들을 끌어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야 조합원이 아니었다.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감금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야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유대인을 감금했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야 유대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끌어내자 아무도 없었다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