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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교水魚之交, 관포지교管鮑之交, 지란지교芝蘭之交

by 윤해


2024.07.22

'무엇이 중한디' 어눌하고 당돌하게 내뱉는 배우의 대사에서 인생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가 사는 한 생은 그 한 사람이 제왕같이 살았던 사람이던 걸인같이 살았던 사람이던 공평하게 수많은 에피소드와 사건과 시련과 위기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안에 우리 모두는 놓여있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사람과 사이버 세상의 게임 캐릭터를 부리듯이 피안의 저편에서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지켜보는 사람이라는 역할과 형편이 다를 뿐이다.

또 다른 착각은 세상을 살면서 주고받는 고통이 내가 더하고 남이 덜하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이다. 물론 고통의 강도는 다르겠지만 그에 따른 고통의 역치 또한 사람마다 다르니 너의 고통이 덜하고 나의 고통이 더하다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이러한 인생이라는 고해 속에서 망망대해로 나아가는 나와 네가 함께 믿고 의지하며 서로의 뒤를 지켜줄, 세월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는 유일한 동물, 친구를 만나 교유하는 것이다.

天地之間萬物之中에 惟人이 最貴하니 所貴乎人者는 以其有五倫也라.

천지지간 만물지중에 오로지 사람이 최고로 귀한 것은 오륜이라는 올림픽의 상징이 아니라 삼강오륜의 다섯 가지 도리로서 맹자(孟子)에 나오는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오륜의 마지막 벗과의 사귐에 있어 믿음을 빼면 친구는 그럭저럭 옛날부터 알고 지내는 지인의 수준으로 전락한다.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오묘해서 그 의미나 위치가 상승은 해도 하락은 안 되는 것이다. 즉 하락하는 즉시 관계에 따른 의미는 지워지고 위치는 그 어디에도 둘 곳이 없어져 어려운 말로 인연이 다한다고 하는 것이다.

시간에 맞춰 공간을 찾아가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우리는 고기가 물을 찾아 물속에서 노닐듯이 친구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우연히 만나 물과 고기처럼 수어지교(水魚之交)를 나누는 것이다. 이 시기에 벗과의 만남은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활기가 넘치고 마치 어항 속에 물고기 한 마리가 혼자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수초 사이로 자기와 비슷한 물고기를 발견한 기쁨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어지교(水魚之交)로 벗을 만나 친구로 지내다 보면 그때부터 시작되는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관계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도 받고 그 상처가 여물어 딱지가 생기면 새살이 돋아나면서 상처 준 친구로 인하여 마음이 커지고 성장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단계로 나아간다. 포숙아는 관중과의 만남에서 온갖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어려움에 봉착하였지만 관중이라는 벗의 그릇의 크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고 관중도 포숙아라는 신실한 친구의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자기의 그릇의 크기를 증명해 낸 관포지교의 사귐에서 우리는 자기를 알아주는 단 한 사람의 친구만 있어도 그 자체로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할 것이다.

꽃보다 사람이라는 광고 카피와 같이 꽃의 향기 못지않은 것이 사람의 향기이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못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백리 천리 아니 자손만대를 간다. 서로 믿고 사귀는 친구 간의 관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의 향기가 어찌 지초와 난초의 향기에 비할 바 못될 정도로 강력하지만 그래도 굳이 비유하자면 지란지교(芝蘭之交 )로 우정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은 아닌지 지레짐작해본다.

이처럼 친구 간의 만남과 우정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 수어지교(水魚之交)로 사귀다 관포지교(管鮑之交)를 통해 성장하고 지란지교(芝蘭之交)의 향기를 품는 단계로 나아가며 이 아름다운 우정의 절대반지는 맹자가 그토록 강조하는 붕우유신(朋友有信), 즉 벗과의 믿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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