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7
어린 시절은 하루종일 놀다가 해가 져야 집으로 들어올 정도로 놀이가 몸에 딱 붙어 있는 놀이의 생활화였다.
딱지치기, 구슬치기, 올케바닥, 팽이 돌리기 , 제기차기, 땅따먹기, 자치기, 이병놀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놀이들이 다양하게 있었고 동네 골목길에서 애들만 모이면 자연스럽게 놀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이 놀이는 국민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체육 종목으로 바뀌고 방과 후에는 몰려다니면서
공만 하나 던져줘도 해지는 줄 모르고 뛰어다녔다.
국민학교 내내 발이 성할 날 없이 축구공을 차다가, 운 좋으면 귀하게 구한 글러브 하나로 야구도 가끔 하고 보호장구 없이 파울팁이라도 날아오는 날이면 얼굴을 강타당해 코피가 흘러도 씩씩하게 수돗가에 가서 피 한번 씻고 하늘 한번 보면서 지혈되면 휴지 하나 콧구멍에 쑤셔 넣고 다시 경기에 몰두하면서 사나이로 성장했다.
철저한 부모의 무관심 속에 까진 무릎도 감추면서 잘 때가 되어야 집에 돌아오던 우리에게 집 밖의 세계는 놀이의 보고였으며 발만 뻗으면 매일매일이 모험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잘 놀고 잘 자던 우리에게 닥친 첫 번째 시련이 입시로 내몰린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방과 후가 깜깜한 밤으로 뒤바뀐 후 그 많던 놀이 친구는 썰물처럼 어디론가 사라지고 우리는 삭막한 입시준비로 내몰렸고 어린 시절 즐기던 놀이는 추억의 대상이 되었다.
아마 그때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제대로 놀아 보지를 못한 것 같다. 늘 무언가의 제약이 우리를 억눌렀고 논다고 하는 것은 내일의 성과를 위한 양념이나 스트레스 해소의 방편쯤으로 전락했지 놀이 자체가 주인공이 된 경험은 없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놀이를 손에서 놓고 생존경쟁의 틀 안에서 아등바등 사는 동안 세상은 드라마틱하게 변모했고 우리가 알던 놀이는 오징어 게임 속의 영상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멀쩡한 사지육신과 시간만 있으면 즐기던 우리의 놀이문화도 대부분 사라지고 방방곡곡의 축제에서 겨우 살아남은 몇몇 놀이가 시연되는 서글픈 현장을 가끔 목도하게 된다.
놀기 위해서 일할까? 일하기 위해 놀까? 아마 우리는 지난 한세대 동안 일하기 위해 짬짬이 놀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한 세대를 지나온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무엇보다 세상이 달라져서 지금의 세상은 그때의 세상이 아니다. 비록 코흘리개 시절의 몸뚱이로는 못 돌아가도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충분히 누렸던 시간만큼은 여유로워진 우리들, 머뭇거리지 말고 기회 만들어 외쳐보자 야! 놀자라고
시간은 인간을 기다려 주지 않고 오로지 인간만이 공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시간의 저편에 머물 수 있는 세상의 원리를 놀이로 깨우쳤던 그때 그 시절의 우리로 돌아가 한 바퀴 돌린 세상의 원리에 더해 우주의 섭리마저 깨닫고 돌아간다면 각자로서의 삶을 놀이로 완성하는 도에 드는 한 생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