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7.30
인간이 공간 속에서 시간을 살다 보면 갖가지 필요한 것들이 등장한다. 그중에 핵심적인 것을 꼽으라면 입고, 먹고 , 자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한다.
이 핵심적인 세 가지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에 무엇이 더 중요한 가라는 것에는 저마다 의견이 갈린다.
누구는 먹어야 사는데 먹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고 누구는 그래도 입는 것이 최고라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입고 먹는 것보다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더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이 세 가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너무나 중요한 생사가 걸린 일이기 때문에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어느 하나가 갖추어졌다고 다른 두 가지를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대상이다.
다만 그 사회와 개인이 놓인 시대상과 욕망에 의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향하여 사회와 개인의 일생동안의 에너지가 투사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의주가 아니고 의식주라고 하는 것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사흘을 굶으면 남의 집 담장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고 사흘 밤낮을 굶은 후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짧은 속담은 먹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말한다. 보통 사람보다 먹는 것을 요기정도로 생각하는 나도 왜 식의주가 아니고 의식주일까 라는 의문이 늘 따라다녔다.
의식주에서 식과 주는 먹는 것과 주거하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의되지만 의만 놓고 보면 그리 간단하지 않다 어떻게 옷 입는 것이 먹고사는 것에 우선할 수 있을까? 옷 한 벌이 그리 대단한가? 누구나 드는 의문일 것이다.
그런데 의식주에서 의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그 옷일까?라는 화두에 들어서면 그 옷은 그 옷이 아니다는 깨달음이 온다. 우리가 세상에 와서 처음 입고 돌아갈 때 벗는 옷은 우리의 정신과 마음을 담고 있는 몸이요 육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옷은 단지 우리 몸이라고 생각하는 진정한 정신의 옷, 몸을 가리는 껍데기 일 뿐이다.
그러므로 식, 먹는 행위도 우리 몸을 지속가능하게 지탱해 주는 도구일 뿐이요 주, 잠자고 생활하는 곳도 어쩌면 우리의 진정한 옷, 몸을 지켜주는 확장된 옷일지도 모른다. 의식주라고 우선순위를 정한 것은 세상에 와서 입고 있는 육체, 몸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진리적으로 알려준다.
몸이라는 옷은 세상에 와서 한번 입는 옷이요 우리 정신, 즉 진아를 담고 있는 그릇과 같다.
한 세상을 살다 보면 이 옷을 잘 관리하고 닦고 소중히 하면서 저 세상 갈 때까지 간수 잘하고 사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이런저런 이유로 고군분투하며 돌멩이에 걸려 넘어져 옷이 찢어지기도 하고 장애물을 만나 헤어지기도 하며 또 온갖 유혹에 빠져 몸이라는 옷을 혹사시키다가 수명의 반환점도 돌기 전에 너덜너덜한 옷으로 나머지 세상을 살아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 보면 이 몸이라는 옷도 우리 진짜 자아를 담고 있는 그릇에 불과하므로 육체, 몸이라는 옷이 찢어지고 해어져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정신력과 긍정적 사고로 오히려 주변의 본이 되고 귀감이 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되고 우리는 그 사람을 육체에 갇힌 호모사피엔스의 한계를 뛰어넘은 한 사람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며 몸의 한계를 넘어 인간정신의 고양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며 다시 한번 우리로 하여금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겸허히 반성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