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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모지라는 남편, 똑 부러지는 안해

by 윤해



2024.08.02

애를 보란다고 애를 눈으로만 빤히 쳐다만 보면 안 되고, 빨래를 개주라고 한다고 정말 빨래를 멍멍개에게 주면 안 되며, 세탁기를 돌리라고 한다고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세탁조를 손으로 돌리면 안 되고, 커튼을 치라고 한다고 커튼을 손으로 툭툭 치면 안되며, 분유를 타라는 말을 듣고 분유통을 말 타듯이 타면 큰일이 나고 문 닫고 나가란다고 문을 닫고 나가지 못해 문 앞에 서서 출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물론 이 모든 상황이 웃자고 만든 개그이며 이 모든 것을 지시하는 안해의 명령에 멍청하게 단어 그대로 행동하는 모지라는 남편을 향한 안해의 응징은 늘 매섭고 가차 없다.

안해와 남편이 뒤 바꾸어져 남편이 지시하고 안해가 행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보나 마나 남편이 바담 풍이라고 말해도 안해는 바람 풍이라 알아듣고 가가 가고 또 가가 가다라고 남편이 해괴한 국적불명의 언어로 지시해도 우리의 안해들은 수십 년 갈고닦은 내공과 시행착오를 총동원하여 슈퍼 컴퓨터의 연산 속도로 남편 앞에 남편이 원하는 것을 갖다 놓을 초능력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쩌다 이렇게 남편과 안해의 능력치가 천양지차로 벌어졌을까?

결혼을 결심할 무렵에 하늘의 별도 달도 따줄 것 같은 날렵하고 초롱초롱하던 남편은 다 어디로 가고 결혼 수십 년이 흐르고 난 다음 좀 모지라는 남편 배에 기름이 낀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 데 보이지 않는 머릿속 뇌까지 기름이 낀 것 같이 도무지 하나를 가르쳐 줘도 둘, 셋은커녕 하나도 잘못 알아듣는 사오정 남편이 되어간다

이에 비해 똑 부러지는 안해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 총명함에 갈수록 앞뒤 다 잘라먹고 나오는 남편의 중구난방 헛소리 마저 척하니 알아듣고 똑하니 대령하니 이 좀 모지라는 찌지리 남편과 똑 부러지는 안해의 총명함으로 부부는 일심동체라 겨우겨우 위험한 균형을 이루며 험한 세파를 헤치며 둘은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한 동거를 계속하는 것이다.

수렵본능의 남편과 채집 본능의 안해가 만나면 결국 이처럼 명확한 서열이 정해진다. 인간이 종을 뛰어넘을 수 없듯이 남편도 안해를 뛰어넘을 수 없는 특이점을 반드시 거치게 되고 그 특이점을 넘어서는 즉시 남편은 안해의 수하로 귀속된다.

누군가는 거부하고 누군가는 저항하며 또 누군가는 부정하겠지만 이처럼 부부간에 수시로 작동하는 음양의 이치는 한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재깍재깍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더구나 일터에서 밀려난 남편은 그나마 유일한 주특기,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여 사냥하는 수렵본능 마저 가정으로 돌아오면 퇴화를 거듭하다가 어느 순간 정신줄을 놓게 되고 때 맞춰 온갖 종류의 살림살이를 섭렵하면서 채집본능의 끝판왕이 되어 똑 소리 나는 안해와 조우하게 되면 그야말로 고양이 앞에 쥐신세라 지나간 영광을 그리워하며 세월을 한탄해 봐도 실력이나 능력이나 어느 모로 봐도 영락없는 안해 수하라 어떻게 몸부림 치면 칠수록 가정이라는 깊은 수렁 속에서 헤매고 있는 철부지일 뿐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사노라면 남편은 가정이라는 안해의 홈 그라운드 안에서 행복한 바보의 삶을 이루어낼 수도 있는 인생역전도 가능하지 않을까 소박한 기대를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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