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3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을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귀가 아플 정도로 흔하게 자주 듣는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는 귀엽다는 속담처럼 우리들도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내리사랑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면 치사랑은 왜 이렇게 하기가 어려운가? 여러 가지 이유와 변명이 난무하지만 노인을 사랑하기가 애기를 사랑하는 것보다는 에너지가 많이 들고 힘든 일이며 어르신을 돌보는 치사랑을 하기 위해서 부모님은 물론 부모님 소생의 형제자매 그리고 조부모님 백부 숙부 등등, 친가만도 이럴진대 처가까지 확대하면 치사랑의 대상이 확장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이에 비해 내리사랑은 한결 홀가분하고 단출하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면 애기가 태어나고 부부 두 사람이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한 애기를 그냥 자연스럽게 물고 빤다. 즉 아낌없는 내리사랑의 지독한 짝사랑이 시작되고 그나마 요사이는 내리사랑의 대상이 한두 명 정도이니 치사랑에 비할 바가 못된다.
진입장벽이 낮은 곳은 매 순간 어려움이 숨어 있듯이 내리사랑은 일당백의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상황을 알고 이해해 주시는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것과 아무것도 모르고 시크하기까지 한 자식과 씨름하는 것의 차이가 치사랑과 내리사랑의 차이 아닐까?
물론 치사랑과 내리사랑은 삶에서 적당히 버무려져 있다. 어떤 사람은 칼로 무 자르듯이 불효자의 오명을 기꺼이 지고 내리사랑에 올인하며, 자식 나아가 손자 손녀 양육까지 기꺼이 떠맡으며 내리사랑에 열중하고 극소수의 효자 효녀들은 사랑스러운 제자식에 우선해서 부모님 나아가 형제자매에게까지 기꺼이 자기의 시간과 재화를 투입한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어느 지점 사이에서 엉거주춤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면서 눈치를 보고 있다.
어쩌면 이 세대를 아우르는 눈치가 거대한 강이 되어 우리 사회를 덮치고 성공한 인생과 실패한 인생을 가르고 있다.
고슴도치의 본능대로 아낌없이 내리사랑을 한 부모들의 결과도 이따금씩 들려온다. 인생은 오래된 학교 같아서 평가도 쪽지시험이 아니라 학창 시절 10년을 단번에 결산하는 수능 비슷하면서 근원적 문제는 100년을 결산하는 인생 말년에 한번 본다는 데 있다.
이에 반해 치사랑의 시험결과는 중간고사 같다고나 할까 , 늦어도 환갑 전에 판가름 나며 어느 정도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성적 결과를 바탕으로 남은 여생 동안 자기가 어떻게 살지 어렴풋하게나마 계획을 도모할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진입 장벽이 높은 치사랑을 선택한 소수에게 주어지는 가산점이요, 혜택인 셈이다.
덤으로 치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비록 생물학적 나이가 환갑이라도 경험과 정신연령은 한평생을 산 부모와 이미 호흡을 같이한 까닭으로 말년에 치르는 인생학교의 시험문제가 어떻게 나온다는 것을 이미 간파했으므로 인생 말로에 그래도 조금은 의연하게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지 않겠나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