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해 May 19. 2024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도는 우리가 내딛는 한걸음이 시작


2024.05.19

도는 텅 비어있지만 쓰임에는 끝이 없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상이라는 길을 미리 알고 가는 사람이 없듯이 미래의 인생행로는 텅 비어 있는 것이다.


가을 하늘 공활하고 높고 구름 없더라도 비어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걸어가는 인생행로는 수많은 가능성의 여백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어떤 스토리로 쓰일 것인가를 생각하면 일시무시(一始無始), 즉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도와 같이 쓰임에는 끝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착함을 기반으로 하는  유교의 가르침을 유라 하고 , 개별 생명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나아가는 생명줄의 본질과 여백을 밝히는 등불  같은 도가, 그리고 사람은 본디 그러하지 않다고 끝없이 일깨워 주어 단순하게 봄을 모토로 중생구제를 꾀했던 선사상의 불가, 이 유불선 사상이 도가도 비상도를 타고 달려오고 달려가야 할 길이 우리 동양이 거쳐온  정신문명의 과거 행로이자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한다.


이 천리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끝도 시작도 없는 길을 떠난 생명줄 가운데 놓인 우리의 마음가짐은 어때야 할지 나는 항상 궁금하게 생각했다. 어떤 때는 천리길도 훤히 보는 자신감으로 치기 어린 발걸음으로 내달리기도 했고  어쩔 때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해 우물쭈물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지경에 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 같다.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균형을 맞추고 살아가던 앞서 살아간 우리 선조들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무엇이 다르길래 이렇듯 가치관이 혼란스럽고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서로 시비를 못 가리고 법의 영역도 아닌 상식의 영역마저 대법원 확정 판결 전까지는 싸우고 우기기만 할 뿐 조금의 합의도 동의도 할 수없고 마치 상식의 시비를 가리는 일이 지난하여 포기하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풍파만 없으면 된다는 상식의 안일함에 빠짐은 무슨 이유인지 퍽 궁금했다.


스크루 테이프의 편지에서 "옛날 사람들은 어떤  사실이 확증이 되면 확증된 사실 그대로 행위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현대인은  행동은 행동대로 사실 확증은 확정대로 따로 노는 희한한 상태에 놓여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10년 내에 그동안 접했던 내로남불, 유체이탈 화법으로 무장하여 작게는 개인의 주머니를 털고 크게는 나라의 곳간을 터는 대명천지 대낮에 자행된 신종 부정부패에 아연하고 당혹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는 시대에 맞추어 세상 인간들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탈정보가 만연한 현대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여야 과연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어 살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그저 아득하기만 하다.


일단 모두가 너무 나름 똑똑하게 보인다.


수많은 정보가 난무하는 탈정보시대에서 대다수의 약삭빠른 사람들의 선택지는 지행합일이 아니라 머리 따로 몸 따로 전략이다.


 머리로는 한없이 고결하고 이상적이며 완벽한 이상세계를 거닐면서 , 몸으로는 먹고살고 자손만대까지 편함을 이어가기 위해 온갖 반칙과  편법을 자행하고 심지어 지행불일치의 모순을 상대방에 덤튀기 씌우면서 자신은 고상과 고결의 끝판왕을 자처한다.


이러한  위선자들의 출현의 패악은 점점 독버섯처럼 퍼져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들불처럼 퍼져 이제 우리 공동체에서 아주 한 무리로 집단화해서 호시탐탐 영확장을 하고 있는 지경에 와 있다.


마치 사회의 암세포와 같이 증식과 전이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동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암이 노화의 단계에서 피치 못하게 겪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듯이 우리 공동체도 장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음을 뼈저리게 인지하고 일단은 노화를 받아들이듯이 공동체의 암세포 같은 무리들을 이제는 우리 공동체의 일부로 인지해야 문제가 풀리는 단계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몸 따로 머리 따로의 사조가 우리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이면 비록 힘들더라도 머리와 몸이 일치되는 지행합일의 메커니즘 만이라도 공동체에 뿌리내려야 문제해결의 첫 단추를 낄 수 있다.


 그것을 통해 장밋빛 미래와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분투노력 해야 함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몸소 겪고 행동할 때 비로소 권리와 의무가 국가와 국민이 회사와 사원이 교사와 학생이 남과 여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너와 나가 균형을 잡고 함께 공존하는 공동체 메커니즘이 정착될 때 그 공동체는 회복탄력성이라는 복원력 속에서 지속가능한 도 첫걸음을 내 디딜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알고 싶어요, 알 수없어요, 난 알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