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세상은 수많은 사이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크게 보면 너와 나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에피소드의 연속이요 이 사건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호불호를 나누고 왈가왈부하는 떠들썩한 잔치상 같은 것은 아닐까?
혹자는 이것이 좋아 보이고 또 어떤 사람은 저것이 마음에 들어 각자 나름의 가치관이 굳어지면서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다투기도 하고 때때로 타협하기도 하면서 그래도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미래를 향해 등불을 켜는 사람을 우리는 지도자라 일컫는다.
혼군과 명군의 차이가 종이 한 장 두께의 미묘한 사이에서 판가름 나듯이 국가의 흥망성쇠도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공동체의 투표지 한 장이 미래를 가른다.
시대정신에 맞게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야말로 투표의 묘미다. 광복 후 민주주의가 우리 공동체에 이식된 후 투표를 통해 등장한 지도자들의 면면에서 우리는 우리의 민낯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어떤 이는 국가의 기틀을 잡았고 어떤 이는 나라를 통째로 뒤집어엎어 환골탈태시켰으며 또 어떤 이는 그 와중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그 나머지는 무해무덕하기도 했고 또 사이사이 이념과 공명심 사심으로 나라를 몰고 간 이도 출현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겠지만 해방둥이들이 80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나라의 성적표는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신흥 개발국 사이에서는 단연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고 어느새 미래를 향해 성큼성큼 한 발자국을 내 디딜 수 있는 것이다.
너와 나의 관계, 즉 사이가 돈독해 질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한데 반해 사이가 틀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듯 와르르 무너지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인 것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고 조심해야지 백번 잘해주고 한번 잘못하면 인간은 그 백 번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한 한 번을 기억하는 존재다. 서로 간의 사이에서 객관적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적 대응에 최적화된 존재가 바로 우리임을 명심해야 인간 사이의 파국을 그나마 최소화할 수 있는 것이다.
사이는 틈이다 우주 안에 생명으로 존재하는 우리는 존재를 실체로 인식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다. 즉 우리가 무엇을 인식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무엇이던가 존재와 존재 사이를 틈틈이 인식할 뿐 존재 그 자체는 인식하려야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인식체계마저도 시시각각 변화하고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도 우리가 인식하는 순간 이미 그 대상의 실체는 흘러가 버리는 것이므로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은 소위 그 실체가 진짜 실체가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즉 엄밀한 의미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은 대상과 대상 사이의 틈, 즉 흘러가는 환상을 볼 뿐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를 연발한 각자들의 도 깨지는 소리가 단순히 세상을 살아보니 허무하다고 외치는 세속적 잣대의 외마디가 아닌 진정 진실은 절대로 볼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우주적 존재인 나가 결국 인식할 수 있는 진리는 헛된 환상을 인식했다는 자전적 고백이며 깨달음의 완성 같은 독백 아니었을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