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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지지(生而知之)학이지지(學而知之)곤이지지(困而知之)

by 윤해

2024.08.27


나면서 아는 자, 배워서 아는 자, 고생 고생 끝에 아는 자 사람이 진리를 깨치는 모습을 공자께서는 이렇게 보셨다.


우리는 수십억 년의 시간의 흐름을 딛고 100년도 안 되는 인생계를 살고 있다.


수십억 년의 생명계는 한치의 생략도 없이 한 단계 한 단계 생명이 명령하는 대로 나아온 것의 실체가 지금 우리 내부에 숨 쉬고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인생계에 살아남기 위해 갖가지 지식과 교육, 생존전략을 뇌에 저장하면서 뇌정보적인 삶이 전부라고 믿고 열심히 살았다.


그러나 한 인생을 살면서 진리의 실체에 위배된다고 느끼는 갖가지 일들과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답답함을 느끼고 이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배우고 경험하고 다른 사람들과 생각도 나누고 , 나누고자 했던 생각들 때문에 진짜 사람들로부터 나누어진 이상한 경험을 매번 하곤 한다.


우리가 100년 남짓 살게 된 인생계는 기본적으로 모순의 세계다. 왜냐 하면 수십억 년의 생명계 시간에 비하면 찰나적 순간에 피어나는 불꽃들이 곧 사멸하고 다시 수 십억 년 전의 생명계로 들어가기 직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생이지지(生而知之), 나면서 아는 사람들은 우리가 거쳐온 수십억 년의 생명계의 진리를 그래도 조금은 유전정보적으로 느끼는 사람들이다.


학이지지(學而知之), 배워서 아는 사람들은 인생을 살면서 목에 가시가 걸린 듯 인생계에 문제를 인식하고 진리를 구해 평생 배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다.

곤이지지(困而知之), 인생을 살면서 갖가지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피눈물을 쏟은 끝에 그래도 진리의 그림자라도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곤이불학 민사위하의(困而不學, 民斯爲下矣)라고 곤경을 겪고도 배우지 않으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아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행하는 사람, 지식의 세계에서도 생각만 하고 행하지 않는 겉 멋만 든 지식인의 모습에 조소를 보내기도 하지만 하물며 수행을 강조하는 지혜의 세계에서 행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행위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행위를 닦는 수행자의 덕목을 갖추지 않고는 지혜의 세계로 진입이 불가하다.


어떤 한 사람이 걸어들어 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 한 사람에 주목하지만 그 한사람이 걸어와서 내 눈 앞에 나타나기까지 명멸했던 생명계의 역사를 상상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한 사람을 지금 내가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억겁의 인연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수행자의 자세요 지혜자의 처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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