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22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인마가 각자 갈 길이 정해져 있는 것인가?
유한한 시간이 개별 생명에게 무자비하게 주어지는 유무의 갈림길에서 조금이라도 좋아 보이고 유리하게 생각되는 공간으로 인간의 발길이 향하는 것은 본능적이고도 인지상정이며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지구의 생명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식물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이 공간을 찾아가는 능력치다.
식물은 꽃이 피고 안피고에 따라 열매와 씨로 번식하느냐, 아니면 포자로 번식하느냐가 갈린다. 씨도 겉씨로 번식하느냐 속씨로 번식하는가가 다르지만 동물에 비해 공간을 찾아가는 자유도가 현격히 떨어진다. 식물은 씨앗 시절 바람에 날려가거나 열매가 동물의 먹이가 되어 삼켜지고 소화되어 배설되는 순간 동물의 배설장소가 식물이 평생 살아가야 할 공간이 되는 것이다. 즉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식물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이에 비해 동물은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공간을 이동하는 존재다. 짝짓기와 먹거리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 한다면 진선미라고 하는 추상성에 열광하며 메가시티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문명의 원리가 더해져 귀경천향지풍(貴京賤鄕之風)이라는 평행이론이 역사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인류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개경과 한양이라는 수도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물자와 재화가 천년이라는 세월 동안 집중되었으며, 따라서 공고한 중앙집중이 환상적으로 자리 잡았던 나라 중에 하나다.
6.25 전쟁으로 한 번 1.4 후퇴로 또 한 번, 두 번씩이나 수도 서울이 적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점령자가 남북이라는 피아로 교체되는 와중에서 학살과 파괴는 다반사가 된 전쟁의 참상은 역설적으로 공고했던 천년의 중앙집중을 단박에 무너뜨리고 재화와 인재를 피란이라는 이름으로 지방으로 분산시켰다.
그렇게 지방으로 분산된 인재와 재화는 천년 동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귀경천향지풍(貴京賤鄕之風)이라고 하는 숙명적 굴레에 갇혀 마치 식물과도 같이 공간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이 땅의 수많은 인재들에게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놓아주었다.
이와 같이 전후 세대를 살아온 우리들의 공간 이동의 방향은 서울로 서울로였고 그 결과 우리는 과밀화되고 집중화된 서울도 아니고 경기도는 물론 충청도 마저 아우르는 초 메가시티 서울공화국을 살아가고 있다.
폐족이 된 아들들에게 '너희들은 한양 십 리 안에서만 살기를 당부’하는 잔소리의 끝판왕 다산 정약용의 유언은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는 힘없는 아비가 해줄 수 있는 통찰력 가득한 말씀을 너머 회한에서 나오는 절규로 들린다.
전쟁의 참상과 다산의 절규가 콜라보되어 서울 십리 안 아니라 백리 근방에라도 지게 작대기 만이라도 지고 버틴 사람 모두 부자가 된 세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