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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인생루 하여 산하를 보고 사람을 찾는다

by 윤해



2024.05.25

실사구시, 실천궁행은 부국강병을 이루려는 나라의 도이고 산하를 돌아보고 사람과 정을 나누고자 등관작루의 왕지환이 누각 한 층을 더 올라 천리 멀리를 보려는 욕구는 개인의 욕망이다.

나라와 나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이 세상만사 사건의 출발이다.
나와 나라의 욕망이 달라 극한 대립으로 치달리면 민란이 일어나고 나라가 뒤집어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이 씨 조선 오백 년의 나라의 산하는 변변한 신작로 하나 없는 오솔길의 나라였다.

그래도 팔도각지의 지방에서 올라오는 진상품을 비롯한 물자는 서해안을 타고 올라오는 조운선을 이용하여 한강까지 밀려드는 서해 밀물을 이용하여 마포나루에 물자를 내리고 썰물 때 빠져나가는 시스템으로 국가경제를 유지하였다.

군왕의 입장에서 보면 아쉬울 것 하나 없는 이러한 시스템 덕분에 실사구시나 실천궁행은 거저 서책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세계에서의 비분강개나 정신승리일 뿐 현실세계까지 적용시키기에는 성리학적 사고를 가진 조선의 기득권층에게는 그 어떤 간절함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 민족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풍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국가개혁의 간절함이 없었던 조선은 외척 세도정치의 파행을 겪고 수많은 민초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와신상담은커녕 왕실의 안위만을 도모한 혼군의 처신으로 나라와 백성은 망국의 백성이 되어 도탄에 빠진 것이 우리 근현대사의 뼈아픈 팩트다.

혼군이 망국군주로 미화되어 가치관이 전도된 우리의 근현대사는 왜곡과 분칠과 덧칠이 점철된 혼돈의 역사이며 이 혼돈의 역사적 유물이 지금까지도 우리를 괴롭히는 가치관의 혼돈이며 지금까지도 이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는 역사전쟁의 시발점인지도 모른다.

나라고 하는 개인의 미시사도 자기를 알아주는 단 한 명의 지기라도 노년의 삶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는 그 지기 한 명으로 인하여 성공한 삶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젊고 잘 나갈 때 교유하던 친구를 지기라고 지칭하기는 무리가 있음을 나이가 들면 저절로 깨닫고 나는 과연 그 친구에게 한 사람의 지기가 되었는가에 대해 자신할 수 없는 부족함에 반성해 보면서 그저 밝게 비치는 해도 산에 기대어 사라지고 황하는 바다에 기대어 흘러가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한 멀리 천리바깥을 보려고 한 계단 한 누각을 오르려고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등 인생루 하여 산하를 보고 사람을 만나는 모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슬픈 길가메시에게 들려주는 신의 목소리가 남의 일 같지 않고 내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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