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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백년전쟁 2, 독립전쟁1932

by 윤해


서구 편중의 역사를 학습하고 배운 우리는 한반도 백년전쟁에 관해서는 무지하여도 영국 프랑스 백년전쟁 the Hundred Years' War에 대해서 먼저 배우고 대략적 내용 정도는 알고 있다. 잔다르크가 신의 계시를 받고 오를레앙 전투에서 잉글랜드 군을 연파하며 전세를 프랑스군 쪽으로 가져오는 데 성공하고 이후 샤를 7세는 랭스 대성당에서 프랑스 왕으로 즉위하게 되었지만 1430년, 잔다르크는 부르고뉴 군에게 포로로 잡혀 잉글랜드에 넘겨졌고, 이단 및 반역 혐의로 재판을 받아 1431년에 화형이 집행되었다. 그러나 잔다르크는 이후 프랑스 민족주의의 상징적 영웅이 되었고, 나중에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한반도 백년전쟁의 시작인 독립전쟁은 전쟁 당사자,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와 일제와의 체급차이가 비교불가인 연유로 우리 스스로도 독립전쟁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하여 독립운동이라 말한 것은 아닐까?


독립운동은 전쟁이라는 거친 외교와 동맹이라는 일상적 외교의 강온전략을 펼치면서 식민지 한반도를 일제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애국선열들의 피나는 분투노력이 때로는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의 존립마저 위협하였고 독립운동의 노선과 방향을 두고도 심각하게 내부가 분열되었으며 그 분열의 중심에 이승만의 외교전략을 통한 독립운동과 김구의 무력투쟁 중심의 독립전쟁이 병존하고 있었다.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 페리항 선착장에서 울려 퍼진 탕 탕 탕 세발의 총탄은 일제의 대한제국 병탄을 찬양한 대한제국 외교고문 스티븐슨을 처단한 장인환의사의 의거를 알렸으며 뒤이어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의사가 침략의 원흉으로 지목된 이토오 히로부미를 하얼빈역에서 처단함으로써 일제침략의 부당성을 세계만방에 알린 동시에 단기필마로 일제에 대한 독립전쟁의 서막을 연 대사건이었다.


이처럼 1905년 을사늑약에서 1910년 경술국치로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로 몰락해 가는 과정에서도 혼군과 을사오적과 같은 매국무리의 준동만 있지 않았고 단기필마,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수많은 의사들이 나타나 일제를 심판했다.


망국으로 저물어 가던 1908년 1월 한 생명이 한반도를 찾아왔고. 그로부터 5개월 뒤 1908년 6월 충남 예산에서 또 다른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났다.


태어나 보니 일제의 이등신민이자 식민지 백성이 되어버린 두 사람의 상이한 인생행로에서 한반도 백년전쟁, 독립을 향한 이천만 동포의 염원과 모순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단기필마, 당랑거철로 시작된 독립전쟁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를 구심점으로 일제에 선전포고를 하였지만 수많은 내부갈등만 노출한 체 지지부진하고 지리멸렬한 처지에 있었다.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난 식민지 청년 윤봉길의사가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터뜨린 도시락 폭탄은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행사장을 일거에 궤멸시키고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키고 처단한 의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반석에 올리고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독립전쟁사의 쾌거였다.


1908년 1월에 태어나고 자란 식민지 청년은 한반도에서 남아 10대에 3.1 독립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을 목격했지만 망국의 원인이 근대화에 실패하고 자강 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실력을 기르는 것이 나라를 되살리는 애국이라 굳게 마음먹고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먹었다.


이처럼 독립운동과 독립전쟁은 망국의 처지를 되돌리기만 할 수 있다면 사탄과도 손을 잡을 기세로 백인백색의 도구와 방법이 동원되었고, 그로 인해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아수라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독립이라는 지고선의 가치를 이루기 위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되던 그 시기,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존재가치가 부각되었지만 뒤이어 터진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세계 2차 대전이라는 미증유의 불행으로 빠져들고 망국민들은 저마다 열강들의 총알받이로 최전선에 배치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루는 망국의 후손으로서 멍에를 톡톡히 져야 했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한반도 국내진공 작전을 위해 준비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폭 두발과 소련군 참전으로 일제가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독립전쟁은 명분과 기여 모두 박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을 주도적으로 할 수 없었던 원죄를 안고 한반도 백년전쟁의 시작, 일제로부터 식민지 한반도를 해방시키는 민족적 과업을 미소에게 빼앗긴 체 미완의 독립전쟁을 마무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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