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 해 록] 한반도 백년전쟁 6, 혼란 1947

by 윤해





전시와 평시는 도덕률 자체가 달라진다. 다른 정도가 조금 다른 것이 아니라 180도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지나 망국 후 사십 년의 독립운동과 독립전쟁,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전쟁의 참화 속에서 피어난 기적과도 같은 광복의 그날은 장년의 1908년 1월생에게는 마치 꿈을 꾸는 느낌이었으며, 꿈이라면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꿈이었으며 당랑거철의 투지로 일제를 향해 단기필마로 달려가 산화했던 순국선열들에게 진 빚에서 마침내 벗어나는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해방감을 맛본 그야말로 8.15 해방일이었다.

시간을 살 수 없는 인간은 공간을 찾아 나섰고 공간은 인간에게 온갖 고난과 희망을 함께 불러온다. 그 공간은 지정학적 축복인 동시에 지정학적 저주라는 양면성으로 인간을 구속한다.

거악의 일제가 물러난 다음 여운형의 건준에 박헌영의 공산당 조직이 대대적으로 들어가 인공(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전국적 조직을 만들어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했으나 조선총독부로부터 행정을 이양받은 미군정은 처음부터 인공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까지 어떠한 정부형태도 인정하지 않는 포고령을 발동하여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고 했다.

박헌영의 월북은 남로당에 의한 합법적 체제전복이 실패했음을 의미하고 테러와 폭동을 통한 무장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남한에 대한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였다.

1946년 9월 총파업은 철도부터 장악하라라는 남로당의 주도하에 23일 부산에 이어 24일 전국으로 확산하였고 표면상 노동자 처우개선을 내걸었지만 배후에 소련 공산당과 김일성 박헌영이 전평(조선노동조합 전국 평의회)에 지령하여 철도노조 총파업본부를 영등포공장에 설치하는 철도파업을 신호탄으로 전신, 전화, 전기, 운수, 섬유, 금속, 화학, 출판, 신문 등 40여 개 노동단체 소속 노동자 25만 명이 파업에 가담했고 서울에서만 295개 공장이 파업함으로써 미군정청 러치장관이 불법파업임을 선언하여 9월 30일 오후 5시부터 수도경찰청 경찰관 3500명을 투입 철도노조 총파업본부를 급습 파업노동자 1800명이 검거되면서 진압된 9월 총파업은 이렇게 공산당의 지령과 사주로 시작되었지만 이를 그대로 믿지 않고 선동되는 군중들의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공산당원들은 9월 총파업을 발판 삼아 전국적인 폭동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우파지도자 테러는 9월 12일 이승만 권총저격, 10월 12일 경무국장 조병옥 수류탄 테러 , 13일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수류탄 테러가 모두 미수에 그쳤지만 범인은 역시 남파 공산당원이었다 이 모든 모의는 비극적인 10월 1일 대구폭동으로 연결되었고 일제라는 거악의 질서가 물러난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기까지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었고 그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1947년은 밝아왔다.

광복의 환희도 사라질 무렵 갈등과 야만이 극도의 혼란으로 나아간 해방정국에서 좌익은 준동하고 우익은 움추러 들어있었다. 준동하는 좌익들은 공산주의 선동을 십분 발휘하여 일제라는 거악의 질서가 떠나간 빈자리를 재빨리 차지하기 위해 언제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와 폭동 심지어 정판사 위조지폐로 경제혼란을 일으켜서 해방정국을 내란상태로 몰고 가기 위해 그때나 지금이나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자행하였으며 이에 더해 적화에 걸림돌이 되면 거짓의 올가미를 씌우며 음모와 모략 선동과 폭동으로 해방정국 1947년은 란한 희망으로 달려가고 았었다.

미소의 패권질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좌익과 우익이 본격적으로 충돌하던 1947년은 경성부가 서울시로 독립하여 경기도에서 분리되고 다음 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는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다.

그해 3.1절에 좌우익이 충돌하여 이듬해 제주 4.3 사건의 원인이 된 제주 3.1절 발포사건이 있었고 7월 19일 몽양 여운형, 12월 2일 설산 장덕수가 차례로 암살당하는 혼란의 그해 겨울은 전 지구에 걸친 저온현상으로 서울은 연평균 기온이 9.6℃로 기상 관측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고 나라 밖에서도 기록적인 한파가 내습하여 전쟁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사망했고, 농작물 피해도 극심하였던 을씨년스러운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윤 해 록] 한반도 백년전쟁 5, 분열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