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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해 록] 한반도 백년전쟁 7, 건국 1948

by 윤해



망국의 아픔을 딛고 1908년 6월생은 건국의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기 위해 독립전쟁에 제 한 몸 바치고, 찬바람을 뚫고 꽃을 피워 세상에 맑은 향기를 가득 퍼뜨리는 매화가 지듯이 중국 백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매헌 윤봉길의사와 같은 순국열사들의 의거와 함께 3.1 만세운동이라는 한민족 특유의 비폭력 저항정신에 힘입어 세계 2차 세계대전 전후처리를 위해 모인 미 영 중 정상, 루스벨트 처칠 장쩨스는 1943년 11월 27일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인의 독립을 약속하는 카이로 선언을 하였고 뒤이어 포츠담 선언과 얄타회담을 통해 이를 구체화함으로써 한국의 독립과 건국은 기정사실화 되었다.

망국의 아픔을 딛고 1908년 1월생은 3.1 독립만세운동을 생생히 목격하고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자강하여 독립과 건국의 그날이 오면 실력을 길러 건국의 주춧돌이 되고자 일제의 심장부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 은인자중 하면서 독립과 건국의 그날을 오매불망 염원하였다.

준동하는 좌익과 움추러드는 우익 그리고 해방공간의 새로운 질서가 된 미군정은 볼셰비키 혁명의 영향으로 조직화된 남로당과 힘겨운 내전을 하고 있었고 독립전쟁에서 살아남은 1908년 1월생은 산화하고 순국한 1908년 6월생을 대신하여 건국의 그날을 하루라도 빨리 당기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고 중심을 잡고 힘겨운 하루하루를 쌓고 있었다.

이러한 혼신의 힘과 중심에도 불구하고 반민족 일제 부역자들을 청산하겠다는 선동을 앞세우며 테러와 폭동을 일으키며 민족의식을 자극하여 광기의 혼란과 갈등을 유발하는 세력들은 놀랍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외세를 등에 업고 민족보다는 공산주의 세력확장에 혈안이 되었던 공산주의 남로당 세력들이었다.


스탈린의 극동정책의 대리자 스티코프의 주도하에 북한에서는 민족지도자 조만식을 배제하고 소련의 마리오네트 김일성을 내세워 일사불란하게 북한의 지주계급과 기독교세력을 척결하고 공산당 일당독재를 완성한 그들은 또다시 민주주의 민족전선이라고 하는 허울뿐인 민주와 민족을 전면에 앞 세우며 선동하고 폭동 하여 남한의 적화를 위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도구를 악용하면서 반민족적 매국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제주 4.3은 육지에서 일으킨 그들의 선동과 폭동이 미군정에 의해 가로막히자 만만한 제주도로 건너가 제주도민들을 선동하고 기만하여 제주도 전체를 붉게 물들여 궁극적으로는 유엔이 결의한 한반도에서 투표가능한 지역에서 5월 10일 투표를 통해 합법적 정부를 구성하여 8월 15일 건국을 하려는 건국일정을 무위로 돌리기 위해 치밀한 공작을 벌인 남로당의 계산된 선동과 폭동에 이은 반민족적 학살극이자 예견된 비극이었다.

지금도 아물지 않는 제주 4.3의 비극을 딛고 5.10 총선을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한 우리는 드디어 제헌의원들의 압도적 지지하에 대통령으로 뽑힌 이승만을 국가원수로 하여 40여 년의 망국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우리 손으로 건국하는 감격의 순간을 마주하였다.

40년간의 망국 그리고 광복에 이은 갈등과 분열 혼란을 딛고 세운 대한민국의 건국은 1908년 6월생 윤봉길의사가 일본군을 향해 폭탄을 던지고 순국하던 그해 1932년 외교활동을 통하여 국제연맹에서 한국독립을 역설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명전권대사로 임명된 이승만은 2월 24일 국제연맹 본회의에서 일본의 만주침략을 규탄한 내용의 「리튼보고서」가 채택되는데 기여하였고 이러한 외교적 독립운동으로 일본이 국제연맹에서 탈퇴하고 이로 인해 일본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궁극적으로 일본이 패망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제연맹을 주도하고 있던 미국마저도 망국의 사형수출신의 미국 동부의 명문대인 조지워싱턴대학, 하버드대학, 프린스턴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박사를 망국의 민족주의자쯤으로 무시하고 1941년 Japan inside out이라는 훗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될 그의 책을 미치광이 헛소리로 폄훼하기도 했지만 그해 12월 7일 일본에 의한 진주만 공습으로 허를 찔린 미국은 이승만을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정치지도자로서 인식하게 되었고 미국 외교가에서는 새로운 존재감을 가진 인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수많은 모순과 갈등 그리고 혼란 속에서 출발한 대한민국의 건국은 소련 스탈린의 극동적화의 도구로 선발되고 한낱 소련군의 마리오네트에 불과했던 북한의 지도자에 의해 악마화되었던 , 그 당시 그 어떤 세계열강 지도자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지적능력과 국제정세를 보는 탁월한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로서 이승만을 뽑았던 대한민국은 어쩌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신생독립국과는 아예 떡잎부터가 달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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