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섭리도 세상의 원리도 파동의 연속이다. 자연의 섭리가 긴 호흡의 파동이라면 세상의 원리는 짧은 호흡의 파동일 것이다.
지구의 시간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한 길어야 백 년도 안 되는 삶만 허락된 우리 인간에게 그 찰나의 삶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가 싸우고 다투는 전쟁이다.
장진호와 태형笞刑의 계곡에서 중공군과 삼수갑산의 동장군冬將軍에게 전세를 역전당한 유엔군과 국군은 과도한 크롬 함량으로 강철이 부러지듯이 과도한 기세가 부메랑이 되어 기세가 꺾인 것도 모자라 일종의 패닉상태로 1950년 연말부터 중공군에 밀려 점령한 평양을 포함한 북한의 거점들을 속절없이 적에게 내어주고 철수하기 시작했다.
6.25 개전 초기 인공치하 석 달을 생사의 갈림길에서 떨어야 했던 1908년 1월생과 같은 서울시민들은 북진통일의 희망으로 가득했던 가을의 기억을 뒤로하고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를 거듭하는 유엔군과 국군의 전황을 보고 들으며 또다시 생사의 기로가 눈앞에 있음을 직감했다.
지난여름 개전초기 한강 방어선 구축을 위해 잘려나간 한강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독 안에 든 쥐신세가 되어버렸던 서울시민들은 인공치하 3개월의 악몽을 다시는 겪을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며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걸어서 탈출했다.
1908년 1월생도 황급히 피난을 준비해야 했다. 마침 제자가 알선한 트럭을 구할 수 있어서 대부분이 책인 세간살이를 놔둔 체 가족들만 태우고 그해 겨울을 고향으로 피난했다가 돌아올 요량으로 차량에 몸을 실었다. 거의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이 피난길에 나섰기에 트럭 차창에서 바라본 서울은 말 그대로 적막강산寂寞江山이 따로 없었다.
유엔군과 국군이 1월 4일 서울을 포기하고 속절없는 후퇴를 시작할 무렵 시작된 중공군의 1951년 정월 대공세는 패닉에 빠진 유엔군과 국군을 38선 이남으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고 보급을 우려하여 더 이상의 남하를 주저한 중공군은 오산 삼척 라인에서 전열을 정비한 유엔군과 전선을 형성하며 교착하게 되었다.
흥남철수작전이 북한에 남아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해상으로 탈출시킨 대서사라고 한다면 1.4 후퇴는 인공치하를 경험한 서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육로를 통해 남쪽으로 피난하여 서울을 적막강산寂寞江山으로 만들었고 그들이 피난하여 내려간 곳에서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거대한 인적 물적 교류를 이루어 내면서 한반도에서 천년 동안 공고하게 쌓아왔던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고 중앙의 인적자원 Human Resources을 지방으로 분산시켰던 초유의 사건이 1951년 1.4 후퇴 라고 하는 민족의 대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