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윤 해 록] 백년전쟁 33, 대화 1951

by 윤해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며 전쟁은 포탄으로 하는 대화이고 총성과 포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작된 대화가 1951년 7월 10일 시작된 한국전쟁 휴전회담이다.

대화는 화자話者의 수사학이 아니라 청자聽者의 심리학이라는 평시의 대화 말고 포탄으로 말하는 치열한 전쟁 끝에 마주 앉은 적장과의 휴전회담이 대화 만으로 이어지리라 기대하는 바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사실 전쟁은 대화로 시작되어 회담으로 끝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의 대화가 답을 정해놓고 하는 답정너 또는 전쟁에서 기습을 노리는 기만전술이라고 한다면 치열한 전쟁을 통해 길고 짧은 것을 대본 후 만나는 휴전회담은 그때그때 전황에 따른 무력에 좌지우지되는 실시간 중계방송이 되고 있는 경기장의 모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기습적인 전쟁이 기만적 평화 제의가 난무하는 복선으로 출발하듯이 본격적인 휴전 회담은 역설적이게도 고지전이라고 하는 최전선 병사들의 영혼과 육체를 갈아 넣으면서 시작된다.

이처럼 전쟁의 시작은 한 사람의 독재자가 단순하고 무모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전쟁의 마무리는 여러 사람이라는 이해관계인들이 모여 복잡 다난하며 정교하게 마무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되고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만 2년에 걸쳐 159회의 본회담과 765회의 각종 회담이 개최되었던 공산주의자와의 대화에서 미국은 새로운 패권질서로 나아가기 위해 한반도라고 하는 최전선을 지정학적 축복으로 돌려놓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대한민국은 참혹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정학적 저주에 갇혀 좌절된 북진통일이라는 민족적 염원에 어떤 식으로든 대답해야 했다. 6.25 전쟁의 전범에 불과한 공산주의자들의 기만과 억지는 회담이 진행될수록 점입가경이었고 휴전회담은 대화가 아니라 최전방 고지전에서 뺏고 뺏기는 전투를 통해 이어지는 지루한 소모전 만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한반도의 중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휴전회담과 전방 고지전의 치열함과는 별개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1908년 1월생처럼 서울에서 지방으로 흩어진 피난민들은 전쟁의 참상에서 휴전의 일상으로 차츰 복귀하고 있었다. 하지만 후방에서의 생존전쟁도 전후방이 따로 없고 고지전을 치르던 최전선의 병사와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서는 모두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 있었다.

2025년 지금 백년전쟁이라는 사이버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도 주고받는 대화 역시 실종되어 가고 숫자와 프레임 탈법의 논리가 정의와 포용 그리고 도덕을 압도하는 공산주의 추종세력들의 히드라 같은 질긴 화자話者의 수사학이 대다수 국민들인 청자聽者의 심리학과 무관하게 무엇이 그리 급한 지 80년 가까이 쌓아온 대한민국의 유무형의 SOC라고 하는 급자탑을 가차 없이 바쁘게 무너뜨리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계급투쟁으로 무장되어 여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산주의자와 그 추종세력과의 대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역사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한국전쟁 중의 휴전회담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윤 해 록] 백년전쟁 32, 강요된 휴전 1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