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덧없고 공간은 의구依舊하나 인간은 간데없다. 평시平時의 삼간三間도 바쁘게 사이를 좁히며 흘러가지만 전시戰時의 삼간三間은 아예 사이라는 것이 폭삭 내려앉아 시공時空이 인人을 잡아먹어 시간은 멈춘 듯 공간은 적막강산의 공허감만 남고 인간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평시의 싸움도 격렬하게 싸우다 보면 왜 싸우고 있는지를 까먹을 때가 많다. 하물며 전시의 격렬한 전장에서는 서로의 피와 살이 터지고 공간은 폐허가 되고 인간은 죽어나가며 그 참혹한 고통에 비례하여 시간은 더디게 흐르기 마련이다.
이처럼 전쟁의 패턴은 선빵과 카운터블로가 작렬하는 기세와 저력의 격전을 치르고 나면 소강국면小康局面이 오고 소강小康은 재빨리 기세와 저력이 머무는 지점이라는 공간을 찾아내고 서로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밀고 밀리면서 힘을 소모하는 교착膠着에 이르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더 이상 도모圖謀하지 못할 만큼 힘이 소진되면 무엇을 위하여 싸우는가에 대한 깊은 현실 자각 타임, 즉 현타가 오기 시작한다. 각자의 입장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누구는 더 싸워야 한다고 , 누구는 이쯤에서 멈추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싸움의 당사자들은 대개大槪 매몰비용과 오기傲氣때문에 누구 하나 선뜻 휴전은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이 되기가 십상이다.
한국전쟁은 1951년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전선이 고착화되면서 지구전의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비밀리에 휴전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 비밀 합의에 따라서 유엔 주재 소련대사 말리크가 1951년 6월 23일 유엔 라디오 연설을 통하여 전쟁 교전 당사국들 사이의 휴전과 군병력의 38선으로의 철수를 논의하기 위한 휴전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이 제의에 호응하여 맥아더 해임 이후 새로운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리지웨이 사령관은 원산 앞바다에 떠 있는 덴마크 의료선에서 휴전회담을 개최하자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공산 측은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해 왔다.
유엔군 측은 개성에서 개최하자는 공산 측의 제의를 받아들여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만 2년에 걸쳐 159회의 본회담과 765회의 각종 회담이 개최되었다. 이러한 회담 과정에서 공산주의자와의 대화가 얼마나 어렵고 험난한 여정인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출발점이자 자유진영으로서는 소중한 경험으로 휴전회담은 다가왔다.
독립전쟁,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까지 1908년 1월생에게는 전쟁이 일상인 생을 살아왔지만 그가 마주한 한국전쟁만큼 참혹慘酷한 전쟁은 없었다.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한반도라는 강토가 폐허가 되어갔고 수백만이 죽어나갔으며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을 갈아 넣고서라도 반드시 쟁취했어야 할 통일된 대한민국을 염원했었던 삼천만 동포는 물론이고 1908년 6월생 매헌과 같은 순국선열들의 숭고한 희생마저도 허사로 돌리는 분단을 기정화 하는 한국전쟁의 휴전회담 소식 앞에 1908년 1월생과 같이 전쟁의 참화를 치열하게 겪은 우리 국민들 모두는 이 참혹慘酷한 전쟁을 끝내고 싶은 불감청不敢請이나 고소원固所願의 휴전이 아니었다.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앗아가 버리는 강대국들이 강요하는 휴전회담 소식을 받아 든 우리 민족에게 있어 통일 없는 휴전은 청천벽력靑天霹靂과도 같은 아픔이자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허망함과 천붕天崩의 슬픔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