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7월 10일 시작된 한국전쟁 휴전회담은 예나 지금이나 공산주의자 또는 공산주의 추종세력과의 대화가 얼마나 기만적이며 회담은 얼마나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3개월 전 확전을 주장하는 맥아더 원수를 전격 해임하는 맥 아웃 MAC OUT을 시키고 서둘러 극동의 자그마한 나라의 전쟁을 마무리하고자 전쟁 중의 장수를 날려버린 트루먼이라는 혼군昏君의 오판誤判은 교활하기 짝이 없는 적에게 있어 자국 인민들에게는 선전선동의 빌미를 제공했고, 자유진영을 향해서는 기만과 협박을 마음껏 할 수 있는 널찍한 마당을 제공했다.
휴전회담은 제한전制限戰으로 자승자박自繩自縛한 트루먼의 조급한 의도 때문에 회담장소부터 중립적 위치가 아닌 적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적지 개성에서 시작되어 공산주의자들은 자국 인민들에게 미제가 고개를 숙이고 항복하러 왔다고 대대적 선전선동을 일삼았다.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회담장 주위를 둘러싸고 무력시위를 반복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행에 옮기는 공산주의자들의 집요함 때문에 휴전회담은 공전에 공전을 거듭하고 있었고 백여 일이 지난 1951년 10월 25일 마침내 개성을 포기하고 회담장소를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 일명 널문리 마을 판문점板門店으로 명명한 중립적 위치로 옮겨 휴전회담은 진행되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 미국은 비록 승리의 샴페인을 일본에서 터뜨리고 안락함에 취해 5년을 보냈지만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군 장성들은 면면마다 실전에서 단련된 전장의 영웅들이었다.
인민의 군대를 자처하면서 온갖 화려한 견장과 훈장 등 장식을 주렁주렁 달고 나타나는 공산주의 군대의 장군들과 달리 거의 졸병과 다름없는 카키색 군복에 계급장만 별이 달린 미군 장성들의 복장은 그 담백함과 실용성으로 미군 장군들은 졸병장군 GI General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2차 세계대전 유럽전선의 명장 패튼 원수의 오른팔 월턴 워커장군은 패튼의 기동전을 빼다 박은 전선지휘를 낙동강 방어선에서 펼쳐 적의 맹공을 버텨내고 기어이 적을 북으로 밀어내었고 5000분의 1에 불과하다던 희박한 성공 확률을 뚫고 인천에 상륙한 맥아더 원수의 오퍼레이션 크로마이트OPERATION CHROMITE는 그를 군신의 반열로 올렸으며 명장을 날린 혼군 트루먼의 위기 속에서 기용된 핀치히터 릿지웨이와 밴플리트 장군 모두 위기를 기회로 전화위복 시킨 역전의 명장들이었다.
그리고 이 잊고 싶었던 전쟁, 잊혀진 전쟁 Forgotten War에서 후줄근한 복장의 졸병장군 GI General들이 결코 잊지 못할 순간으로 기억된, 그들을 한국전쟁에서 혼신의 힘으로 전쟁을 지휘하고 워싱턴의 제한전이라는 족쇄 속에서도 타국의 조그마한 한 뼘 땅을 되찾아 주기 위해 불굴의 희생으로 피를 흘린 까닭은 그들이 전장에서 만났던 신생독립국 대한민국의 초라한 무장을 한 무명용사들의 눈동자 하나하나 마다 아로새겨져 있던 망국의 독립전쟁에서 거악의 일제에 대항하여 당랑거철螳螂拒轍의 결기로 달려든 1908년 6월생 매헌의 눈빛을 이들 역전의 영웅 졸병장군 GI General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미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멸사봉공 살신성인을 실천한 독립전쟁의 영웅, 1908년 6월생 동갑내기 매헌에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언제 올지 모르는 전쟁 너머의 세상을 살아나갈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은 한시도 쉴 수 없다고 스스로를 재찍질 하면서 피난지 전시학교에서 1908년 1월생은 거악의 일제에서 스스로를 자강 했듯이 한국전쟁의 포연 속에서는 미래세대를 자강 시키기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르고 있었다.